초기 사회주의 발전 전략의 원형으로 제시되었던 '자립(self-reliance)'은 경제 성장이 가속화됨에 따라 성장을 제약하는 조건이 된다. 경제 성장이 가속화될수록 무역 수지 균형을 달성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생산적 축적률이 하락, 성장을 제약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산 전문화에 근거한 무역 확대와 사회주의 국가 간 경제 협력을 토대로 장기적인 무역 계획을 설정함으로써 축적률의 저하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칼레츠키의 결론이었다. CMEA 형성을 통한 사회주의 국제 분업의 시도는 성장의 제약을 무역 정책 변화로 극복하고자 했던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자립과 경제 성장의 긴장 관계 속에서 무역 정책의 변화가 시도되는 것이다.
한편, 북한이 직면한 정치, 경제적 특수성은 자립을 강화하는 요인들로 작용한다. 분단으로 인한 체제 경쟁의 압력, 발전한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종속의 우려로 인하여 북한은 CMEA 참여를 거부하고 자력갱생의 축적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또한 소규모 경제라는 경제적 조건은 또한 자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1960년대까지 북한의 대외 경제 관계는 실질적인 폐쇄 경제기로, 외연적 방법에 의한 강행 성장이 지속된다. 1960년대 후반 생산 과정의 병목 현상, 투입물의 수업 수요 증대와 같은 외연적 성장의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북한은 1970년대 초반 대서방 무역 확대 정책을 통해 성장의 제약을 극복하고자 한다. 1990년대 이전까지의 북한의 무역 확대 정책은 대내 경제의 긴장을 극복하기 위한 수입의 요구와 수입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수출의 강조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수입 우선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자립 경제의 보조적 수단으로 무역의 역할을 한정시키고 있는 것이 1990년대 이전의 무역정책의 특징이다.
그러나 1990년대의 변화된 환경은 북한의 무역 정책의 변화를 강제한다. 1990년대 북한 경제 침체의 직접적인 원인은 중국이 대북한 수출에 경화 결제를 요구한 것과 소련의 붕괴에 있다. 그간 북한의 중공업 중심의 계획 경제를 뒷받침해 준 에너지, 각종 원자재 및 기술, 설비의 공급자로서 그리고 북한 공산품의 소화자로서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이 정지함에 따라 1990년대 북한의 대외 무역 정책은 대체 시장과 새로운 교역 파트너를 찾으려는 북한의 필사적인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된 환경의 압력 속에서 시도되었던 1990년대 북한 무역 정책은 다음의 2가지 측면에서 그 이전의 무역 정책과 차별성을 가진다.
첫째, 생산 전문화에 근거한 무역 확대 정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전의 북한 경제는 자립의 발전 전략이 지속적으로 성장을 제약하는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외연적 방법에 의한 강행 성장의 모순이 1960년대 후반 이후 제기되었고 이로 인해 대내외적으로 부족이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립의 발전 전략을 지속해왔다. 칼레츠키가 언급한대로 균형 무역 수지 달성의 어려움이 가중됨에 따라 '수입 축소와 수출 확대' 전략이 병행된 것이 1990년 이전의 무역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전략은 성장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생산 전문화에 근거한 무역 확대를 통해 성장의 제약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칼레츠키의 대안이었다. 1990년대 북한 무역 정책은 그 이전과 달리 생산 전문화에 대한 시도와 자본주의적 방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포괄하고 있다.
둘째, 1990년대 무역 정책은 발전 전략의 변화와 동반되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무역 정책과 차별성을 가진다. 1994년 제기된 혁명적 경제전략은 그 이전의 중공업 우선주의에서 탈피하여 소비재 중심의 생산 구조의 개편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공업 산업을 내수를 위한 부문과 수출을 위한 부문으로 이원화하여 수출 확대 전략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1990년대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수출상품 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수출 전략을 반영하고 있다.
1990년대는 북한 경제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대외적으로는 국제 시장의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대내적으로는 경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개혁이 시도되었으며 남북경협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무역 정책에 있어서의 변화는 수출상품 구조가 고부가가치 상품 중심으로 개선되고 있고 무역 상대국이 다변화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북한 무역 정책의 과제는 1990년대 정책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수출 확대전략을 추진하는 한편, 경제 위기 이후 노후화된 생산 기반을 정비하고 산업 시설을 현대화하기 위한 수입을 확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