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영유아가족 지원정책이 시간사용의 남녀차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정책의 방향성에 따라 성역할분리와 일·가족의 이중 부담이 완화될 수 있는지를 고찰한 연구이다. 한국사회의 일하는 어머니들이 일과 가족책임으로 인해 높은 시간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가족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지침을 얻고자 하였다. 정책의 영향력과 시간사용의 남녀차이가 가장 명확한 영유아의 부모가 본 연구의 분석대상이었다.
페미니스트 복지국가 비교 연구자들은 가족정책이 두 가지 상이한 방향으로 발전해왔음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평등' 전략에 기반하여,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높여 남녀모두가 일하는 것을 지원하는 방향이며, 다른 하나는 '차이' 전략에 기반하여, 양육 역할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기존 비교가족정책연구에서는 가족정책의 방향성이 성역할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노동시장 참여 등 '공적 영역'을 중심으로 검증할 뿐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평등과 차이는 실증연구로 규명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이 화폐의 흐름으로 잡히지 않는 '사적 영역'에서의 정책효과를 살펴보기 위하여, 시간일지 자료(time-diary data)를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시간일지 자료는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였는가를 기록한 자료로, 이 자료를 통해 유급노동, 무급노동, 여가시간의 분배를 포착할 수 있다. 시간사용 연구들은 일반적으로 배우자 고용지위, 부부 외 성인가족의 수, 가구소득, 교육 등 미시변수에 관심을 기울여 왔지만, 본 연구는 이러한 미시변수들을 통제했을 때 나타나는 정책의 효과에 주목하였다.
미시자료와 거시자료를 통합분석하고, 유급, 무급, 여가시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하기 위하여, 본 연구는 다층경로분석(multilevel path analysis)을 적용하였다. 다층경로모형은 동일한 국가 내에 속한 개인들 간의 유사성을 포착하는 다층모형과, 여러개의 종속변수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경로모형을 결합한 모형이다.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성분분석 결과에 따르면,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가족지원정책도 두 가지 방향의 패키지로 분류되었다. 첫 번째는 출산·육아휴가, 0-2세 보육, 남성의 휴가사용 유인 등 '평등'에 기반한 '노동지원정책'으로, 두 번째는 양육휴가, 양육수당, 3-5세 보육 등 '차이'에 기반한 '양육지원정책'으로 나타났다.
둘째, 이들 중에서 노동지원정책이 남녀간의 성역할을 적극적으로 재분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지원정책은 남녀 간의 유급노동시간과 무급노동시간의 격차를 줄이며, 남녀 모두의 여가시간을 늘리면서 특히 여성의 여가시간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노동지원정책이 발달한 국가일수록, 남녀간의 성역할 분리는 줄어들며, 여성의 이중 부담도 완화되는 경향이 발견된다. 이는 적극적 시간재분배를 위해서는 노동지원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 양육지원정책의 경우는 유급, 무급, 여가시간 모두에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는 양육지원정책이 적극적으로 시간을 재분배하는 효과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양육지원정책이 시간사용의 성별격차를 늘리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정책적 지원이 없이 시장기제에 아동양육의 부담이 맡겨지는 것은 그 자체가 남녀간의 시간불평등의 요소를 이미 충분히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양육지원정책은 이러한 시간사용의 젠더갭을 줄여주지는 못하지만, 양육지원정책이 발달한다고 해서 젠더갭이 더 커지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이론적, 방법론적, 정책적 함의를 가진다. 첫째, 이론적 함의이다. 본 연구는 가족정책에 대한 비교 연구와 시간사용 연구의 간격을 메워, 개인의 미시적 시간사용 행위는 정책의 수준과 정책에 따라 체계적으로 달라짐을 보여주었다. 가족정책 비교 연구에서는, 시간사용 자료를 이용하여 그 동안 분석되지 않았던 '사적 영역'에서의 성역할 분배를 분석하였다. 반대로 시간사용 연구에 있어서는, 성별의 차이를 제약하는 가족지원정책의 영향력을 제시하였다. 둘째, 방법론적 함의이다. 본 연구는 다국가 서베이 자료를 분석하는 유용한 방법론적 틀을 제공하였다. 특히 본 연구가 사용한 다층경로모형은 시간자료와 같이 여러 개의 상관성 높은 종속변수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어, 시간사용의 종합적인 모습을 고찰할 수 있었다. 셋째, 정책적 함의이다. 출산·육아 휴가, 0-2 보육 등 노동지원정책은 남녀의 성역할 차이를 줄이고 여성의 이중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임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여성들이 처한 높은 시간압력은 정책의 수준이 낮은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노동지원정책의 발전이 이러한 시간압력을 보다 평등하게 분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양육휴가와 수당, 3-5세 보육 등 양육지원정책은 성역할의 적극적인 재분배를 가져오지는 못하지만, 보다 전통적인 성역할로 회귀하지도 않음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