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김대중 행정부 시기 북한의 대외인식의 변화를 검토하는 데 있었다. 또한, 문제의식은 북한의 인식과 행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필요성에서 본 논문은 북한 당기관지에 정기적으로 게재되는 『월간국제정세 개관』을 중심으로 북한 정치엘리트의 대외인식과 그 변화의 성격을 탐구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목적들을 위해 북한 대외인식의 변화를 조망하기 위하여 Philip E. Tetlock 등이 제기한 '학습' 개념을 적용하였다. 학습 개념은 냉전기와 탈냉전기를 아울러 발생한 외교정책 진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고안된 일반적 개념인데, 다양한 접근방식 중에서 인지내용의 학습, 인지구조의 학습, 효율성 향상의 학습 개념을 통해 북한의 대외인식에서 발생한 변화를 수준별로 가늠해보았다.
전반적인 평가에 앞서, 『월간국제정세개관』에 나타나는 북한의 대외인식의 변화를 외교전략적 논의와 군사전략적 논의로 구분하여 기술하였다. 1998년과 1999년까지도 북한의 대외인식은 미국과 동맹과의 관계는 미국이 통제권을 행사하는 관계로 변함이 없다는 가정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1999년 12월을 기점으로 북한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관계에 대한 가정을 명시적으로 수정하였고, 동맹국들의 미국에 대한 반대를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전략적 변화를 추구하여,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반대는 강대국, 개도국, 비동맹국가 등을 포괄하는 국제사회 내의 일반적 현상이라는 해석방식을 수용하였다. 1999년 12월 이전에는 미국에 대한 체제생존 문제에 외교전략적 논의가 해법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었으나, 대외인식의 변화에 따라 국제사회 지형에 관한 외교전략적 논의의 중요성과 범위가 제고되어 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기술에 토대를 두고, 본 논문에서는 해당시기 북한의 변화를 규정함에 있어서 Tetlock의 세 가지 학습 개념에 따라 논지를 전개하였다. 인지내용의 학습은 1999년 7월 이후 한미군사관계에 대한 평양의 시각이 변화하면서 초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군사적 전술의 실패 이후 북한의 대남관계 확대가 허용되었고, 북미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대남접근에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미국의 통제권 개념이 제거되고,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정치적 개념이 이를 대체 하였다. 인지구조의 학습에서 조명하였을 때에는, 9/11 사태 이후 증대된 불확실성으로 무엇을 우선 추구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학습이 발생하였다고 규정할 수 있다. 선택방식의 가변화로 북한은 군사력 유지와 경제재건을 병행하여 추진하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효율성 측면에서 학습은 부시행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포기 압박이 거세진 2002년 중반의 조건으로 발생하였다고 보았는데. 고조된 안보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필요에 따라 평양은 군사적인 목적을 한계적으로 하향 조정하고 미국의 협상을 유도하기 위해 대남관제 등 가용한 수단을 활용 하였다. 그에 따라 북핵 2차 위기 이전에는 불가침조약 등 비군사적 수단에 의한 대미안보가 일시적으로 모색되었다.
세 가지의 학습의 상호연관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 햇볕정책의 한계와 가능성을 성찰하게 해준다. 햇볕정책과 북한체제 측의 안보정책 변화의 관계는 충분조건이 아니며, 핵심적인 요인은 평양의 시각에서 비군사적 안보의 필요성과 가능성, 그리고 당위성이 자각되는 조건들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일시적인 비군사적 안보 구상은 9/11 이후 대외상황의 재평가, 그리고 미국 측의 경고와 자극으로 인한 대미접촉 필요성의 증대가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실험적으로 시도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의 변화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제한적으로 편입하면서 외교전략적 논의가 확대 되어 도출된 것이므로, '햇볕'의 영향이 전무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함의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