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성공에 대한 학자들의 조언은 매우 다양하다. 이들 조언들은 상당수가 파편화된 지식으로 존재하여 흡사 격언이나 속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지적 혼란 속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보다 체계적인 지식으로서 대통령의 성공적인 정책추진의 노하우(know-how)를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대통령의 전략적 리더십은 대통령이 성공적인 정책추진을 위해 입법전략과 행정전략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적 리더십을 살펴보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기존의 선행연구들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정책문제인식과 해결의지, 대통령의 행정제도운영 능력, 대통령의 대(對)의회 영향력, 대통령의 정치경제적 상황 및 여론에 대한 대응, 정책의 성격과 추진방식의 선택, 대통령의 정책추진 타이밍으로 구성된 전략적 리더십 모델을 구성해 실제 정책사례에 적용해 본다. 연구대상이 되는 정책사례로는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와 노무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건설정책을 선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사례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의 진전과정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정책 환경 속에서 한국 대통령들이 보여준 정책추진의 전략적 특성을 살펴보기에 적절할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추진에서 나타난 전략적 리더십의 특성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첫째, 실명제에 대한 정책저항이 주로 경제적 상황 요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김영삼대통령은 금융실명제가 지닌 대중성과 임기 초의 높은 대통령지지율에 의존해 정책추진을 강행하기보다는 실명제의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상적인 입법과정 대신에 정책추진사실을 숨길 수 있는 대통령 긴급재정명령권을 이용하는 행정전략을 선택했다. 둘째, 김영삼대통령은 기습적인 정책실시를 통해 정책저항세력이 금융실명제의 정책추진 과정에 개입할 시간적 여지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정책방어력을 높였다. 또 정책 실시 발표 이후에도 정책저항세력이 법안내용을 변경하여 실명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재계(財界)의 정책지지를 확보하고자 실명제의 정치개혁적 성격을 부각시켜 정책방어에 나섰다. 셋째, 실명제 실시의 적시성에도 불구하고 순차적 타이밍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금융실명제의 정책성공 효과를 이후의 정책운영과정에서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신행정수도건설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노무현 대통령의 전략적 리더십의 특성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책의 입법화가 계획적인 전략적 리더십의 결과라기보다는 정치적 대응의 탄력을 받아 이루어졌다. 지극히 불리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신행정수도특별법의 통과와 정책추진이 가능했던 것은 노무현대통령이 ‘말의 정치’를 통해 얻어낸 정치적 기회를 정책추진의 기회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정책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정략적 대응이 만들어낸 결과이므로 엄밀한 말하자면 전략적 리더십으로 보기는 어렵다. 둘째, 노무현대통령은 신행정수도건설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정책번복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 정책추진속도를 빠르게 조절했는데 이처럼 정책추진 속도를 전략적 리더십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략은 94년 6월까지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천도논란으로 정책추진의 절차적 정당성이 문제시 되면서 이러한 신속한 정책추진이 오히려 정책 반대여론을 부추기는 부정적 효과를 발생시켰다. 셋째, 노무현 대통령은 3대 특별법(신행정수도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을 하나의 패키지법안처럼 연계시켜 동시에 추진했다. 신행정수도건설이 국가균형발전이나 지방분권화와 같은 대규모 사업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기에 이들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법안통과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었다. 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정치개혁법안들을 4대 개혁법안이란 이름을 통해 일종의 유사(類似) 패키지법안으로 구성해 거의 동시적으로 일괄 추진해 나갔다. 이러한 입법추진전략을 통해 모든 정책을 통과시키지는 못해도 보안법 폐지안처럼 야당의 적극적 반대로 성사여부가 불투명한 법안을 정치적 대가로서 희생시킴으로써 다른 개혁법안들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더욱이 4대 개혁입법안 중 사립학교법 개정안처럼 강한 정책저항이 발생한 경우에는 전술적 차원에서 추진시기를 뒤로 연기시킴으로써 정책추진의 융통성을 발휘해 결국에는 사립학교법을 제외한 다른 법안들 모두를 수정통과 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