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태일 시에 대한 인지시학적 탐구를 통하여 그의 시가 자리 잡고 있는 인지 영역과 시세계의 지형도를 밝히는 데 그 목표가 있다. 시 연구에 있어서 인지시학적 탐구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조태일에 대한 연구는 역사주의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연구 방법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인지시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 조태일 시가 어떻게 조직, 형성되었으며 시적 세계가 어떠한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시단에 단단한 시적 성과를 이룩한 조태일의 시사적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인지언어학에 바탕을 둔 인지시학은 언어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며 시가 언어의 첨단을 걷는다는 측면에서 언어학적 고찰은 시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이자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조태일 시에 대한 인지시학적 연구는 언어학과 시학을 융합시키는 분석적이면서 복합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조태일 시에 나타나는 인지시학적 양상을 분석하였다. 첫째, 영상 도식과 발견의 여정을 고찰하였다. 그의 시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상 도식(image schima)은 ‘경로(길)도식 ’, ‘주기(순환)도식’, ‘그릇(용기)도식, ‘안-밖 도식'등이 있으며, 이와 같은 영상 도식을 통해 조태일 시에 나타나는 인지 패턴을 살피고 개념체계에 접근할 수 있다.
둘째, 은유로서의 삶과 의미 양상을 살펴보았다. 조태일 시에 나타나는 개념적 은유로는 ‘인생은 여행이다.’, ‘시간은 물체이다.’‘시간은 사람이다.’, ‘사람은 식물이다.’, ‘인생은 1년이다.’, ‘죽음은 출발이다.’등이 있다. 이와 같은 개념적 은유를 통해 조태일 시에 나타나는 인지구조가 공간과 시간의 교직이라는 것을 밝혔다. 인생을 공간적 차원의 이동인 ‘여행’으로 인지하고 움직이는 삶의 여정을 추보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사람은 식물이다.’를 통해 식물적 상상력의 발현을 읽을 수 있었으며 그의 시가 자연애(自然愛)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았다. ‘죽음은 출발이다.’를 통해서는 죽음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초탈적 삶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셋째, 『국토』의 신체성과 시적 대응을 살펴보았다. 「국토」연작시 48편에 대한 신체어 분석을 통해 조태일은 온몸으로 국토를 노래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국토」연작시는 삶을 온전하게 내던지는 육신의 언어로 우리에게 질박하고 처연한 감동을 준다. 개인적 체험의 세계가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인지체계와 만나 상호 작용하면서 여과된 정서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시적 세계는 시대를 초월하는 체험의 장으로 승화되어 삶의 본성을 자극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넷째, ‘몸’의 언어와 눈물의 미학을 살펴보았다. 「처녀막」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몸’의 언어는 다양한 체험적 증언들을 시로 옮겨놓았으며, 그 정점에 ‘눈물’의 이미지로 확장되어 민족적 정서와 맥을 같이하는 눈물의 미학을 형성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상의 미시적 접근을 바탕으로 조태일 시의 공간 인지와 시적 세계관을 거시적으로 정리하였다. 아울러 정신공간이론을 원용하여 조태일의 공간 인지의 흐름을 제시하였다.
조태일의 공간 인지와 시적 세계관은 첫째, 고립 공간과 대립적 세계관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비극적 현실인식에 근거한 고립 의식은 주로 ‘방’의 공간 인지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었다. 초기시에 주로 나타나는 고립 의식은 시적 자아의 현실적 자각으로 극복되고 자아와 세계의 불화와 길항으로 나아가며 대립적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둘째, 실향 공간과 유목적 세계관을 들 수 있다. 조태일은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났으며 아픈 상처로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을 자연스럽게 시적 세계로 받아들이면서 유목적 삶의 지향성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고향에서의 원초적 체험이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자아가 세계로 나아가는 지향성을 드러내며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자유정신의 시적 세계관을 펼치고 있다.
셋째, 조태일의 시적 세계는 귀향을 계기로 고향 공간과 순환적 세계관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고향 공간으로의 회귀는 자연 회귀의 의미를 지니며 자연적 순환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시적 세계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
끝으로 생명 공간과 상생적 세계관이 나타나고 있다. 고향 인식과 자연 지향의 시적 세계가 생명 공간으로 변모, 발전하면서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적 움직임으로 발현된다. 이것이 민족 현실에 기초한 역사 인식과 소통하면서 통일 지향과 민족화합의 상생적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태일 시의 인지시학적 연구의 의의는 그의 시 세계가 부단한 현실인식과 새로운 의미 탐색의 과정임을 영상 도식과 개념적 은유, 그리고 ‘몸’의 언어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태일은 현대시사에서 드물게 신체적 체험을 통해 자신의 몸을 전경화(前景化)하는 역동적인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와 같은 노력은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를 늘 새롭게 정립하려는 과정으로서 자아의 인지 공간을 우주적 질서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하고 수렴하면서 삶의 진정성을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시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