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몸과 그에 대한 미의식은 철학, 문학, 심리학, 조형 예술 등의 분야에서 오래 전부터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여 왔다. 특히 21세기 이후 젊음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었고, 패션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의 젊고 날씬한 몸은 여성들에게 '지속되는 젊음'에 관한 환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또한 20세기 중반 이후 패션에서 청소년층을 겨냥한 브랜드의 거대한 증가는 소비 주체로서의 미 성숙한 여성성을 암시하는데, 여기서 젊음의 숭배는 각종 미디어와 결합하는 특성을 지닌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젊음은 대중 매체에서 소비의 주체이자 성 상품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결국 남성에게는 환타지의 대상이 되며, 여성들 본인에게는 젊음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물질적 소비를 추구하게 한다.
젊은 몸에 관한 숭배적 현상은 1920년대의 플래퍼 이후, 60년대 트위기(Twiggy)스타일의 유행과 90년대 이후 새로운 경향으로 등장한 갸날프고 소비지향적인 그런지 걸(grunge girl)스타일로 나타났다. 현대 패션에서는 클라우디아 쉬퍼나 신디 클로포드과 같은 섹시하고 글래머러스한 모델이 선호되다가 소년 같기도 하고 갸날픈 요정 같기도 한 어린 모델이 등장하는데, 이는 모성거부의 현상으로 보기도 하며, 현대 패션은 글래머러스와 어린 미성숙의 이미지가 반복되어 나타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스타일은 사춘기 이전의 어린 모습에 대한 동경이 숨어있는 것으로 자기 삶에 대한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젊음의 자유주의 특성과 관계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중성적인 몸의 소녀이면서, 유아적 이미지를 보이지만, 다른 한편 인위적인 자연스러움과 함께 의도적으로 강조된 섹슈얼리티를 암시하는 소녀의 이미지를 숭배하는 경향을 '롤리타리즘(Lolitalism)'이라 정의하고, 이것이 미술과 패션에서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롤리타리즘은 글래머러스한 섹스심벌과는 또 다른, 새로운 섹슈얼리티를 표현했다 할 수 있다.
여성들의 젊음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스스로 롤리타리즘을 추구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본 연구는 소설 『롤리타 (Lolita)』에 나타난 복잡하고 모순된 롤리타리즘에 관해 고찰하고, 롤리타리즘이 나타난 사적 고찰과 예술적 사례를 분석한 후에, 롤리타리즘을 범주화하여 현대 패션에 표현된 롤리타리즘의 내적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소설 롤리타의 내용과 의상에 함축된 의미를 분석하였다. 이는 롤리타리즘의 개념을 분명히 하고, 현대 패션 디자인에 나타난 롤리타리즘을 분석하는 틀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또한 사적 고찰을 통해 나타난 롤리타리즘을 분석함으로써 그 특징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롤리타리즘을 적극 반영한 예술을 분석의 틀로 활용하였다. 특히 미술과 문학에서 소녀를 소재로 부각시킨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미술, 문학 등에 표현된 롤리타리즘은 창조적 영감으로서 미성숙한 소녀의 모습을 이상화하여 표현하거나, 소녀들을 대상으로 도발적인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작품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승화시킨 것으로,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한 무의식의 법칙이 이후 의식적 예술행위와 일치하여 나타나는 것을 의미했다.
소설에 표현된 롤리타와 사적 고찰을 통해 분석한 롤리타리즘, 그리고 예술에 표현된 롤리타리즘을 고찰한 결과 소녀적, 유혹적, 환상적, 중성적인 특징이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범주를 롤리타리즘 패션에 적용하여 유아적 소녀, 유혹적 소녀, 환상적 소녀, 중성적 소녀로서 유형화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분석한 결과, 현대 패션에 표현된 롤리타리즘의 의미를 젊음의 숭배, 암시적 유혹, 금지된 환상, 중성적 매력으로 도출할 수 있었다. 현대 패션에 나타난 롤리타리즘을 분석한 결과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되었다.
첫째, 현대 롤리타리즘 패션에 내재된 젊음의 숭배는 영원히 지속되는 젊음을 위한 숭배의 표현이다. 패션은 젊은 세대를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젊은 여성상이 창조되고 있다. 이 여성상은 순수하면서도 관능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장식적인 형태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 자유롭고 젊은 감성의 스포티한 감각과 소녀적 감성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감각적인 기법과 세련된 느낌으로 표현된 스타일이다. 따라서 날씬함과 젊음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이 스타일은 미성숙한 소녀의 순수성과 청순한 미를 강조하고 있었다. 롤리타리즘이 표현된 패션은 농염하고 에로틱한 무거움이 아니라, '젊음'이라는 가치에 어울리는 경쾌한 에너지를 나타냈다.
둘째, 현대 롤리타리즘 패션에 내재된 암시적 유혹은 프릴, 레이스, 리본, 플라워 모티브 등의 여성스런 디자인과 오간디, 실크, 시폰 등의 쉬어 (sheer) 소재가 순수함과 청결함을 강조했다.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복식 이미지에 모순된 성적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으로서, 여성미를 드러내는 우아한 실루엣, 파스텔 조의 가벼운 색채, 섬세하고 부드러운 소재의 사용과 자수, 리본 등의 장식, 소녀다운 유약함, 장식적 대상으로서의 특징이 있었다. 그러나 이 순수함 속에 감추어진 간교함, 순진함과 타락, 성숙과 미성숙의 이중적 모습은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한 닿을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는, 순수하고 젊고 금지된 대상에 대한 매혹과 욕망을 깨우는 패션 스타일로서 부각되었다.
셋째, 현대 롤리타리즘 패션에 내재된 금지된 환상은 온갖 성적인 자극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은 금지된 것에 대한 욕구를 보이는 것을 패션에 표현한 것이다. 짧은 스커트의 교복을 입은 소녀나 유아복과 같은 어린 아이의 옷은 소녀에 대한 페티시적 측면을 부각시키며, 롤리타리즘 패션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현대 롤리타리즘 패션에 내재된 중성적 매력은 소녀 같기도 하고 소년 같기도 한 양성(兩性)적 모습을 어필한다는 데 특징이 있었다. 양성성 (Androgyny)은 극단적인 젊음, 거의 어린아이 같은 것과 연관되는데 이것은 성인이 되고 세상을 아는 것에 대한 거부의 의미로 강조되었다. 남성복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표현해 소녀와 소년의 모습이 교차되는 이미지로, 중성적이고 이중적 디자인의 공존이 특징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소녀의 중성적 모습에서 에로틱한 매력과 자유로운 감성으로 또 다른 성적인 매력을 보였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소녀의 순수미와 퇴폐미를 동시에 의미하는 롤리타리즘이 이전부터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주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현대 패션 디자인에 있어서는 지속되는 젊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롤리타리즘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었다.
본 연구는 패션에 나타난 여성미에 대한 단순한 분석을 탈피하고, 롤리타리즘이라는 새로운 개념 정의를 통해, 심리적 현상의 시각적 전환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여성미를 패션 디자인으로서 표현하는데 있어, 새로운 인스피레이션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