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및 건축의 공간은 성별과는 상관이 없으며, 남녀 모두에게 동등한 것이라는 사고가 일반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학문분야로서 도시 및 건축은 공간의 '젠더중립성'에 대한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서구 페미니스트 학자들에 의해 도시 공간이 젠더화되어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이후, 많은 연구들은 젠더 관계와 물리적 환경의 상관관계를 밝혀왔다. 페미니스트 연구들은 건조환경의 결정과정에서 여성의 소외,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의 이분법적인 분리, 남성과 여성의 차별적인 공간 경험 등을 지적해 왔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국가들과 캐나다, 호주 등 여러 국가들은 도시와 건축의 공간이 젠더중립적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도시·건축공간의 성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도시개발에 성주류화를 통합하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성주류화란 정책과정과 정책구조에 성인지적(Gender-Sensitive) 관점을 반영하여 정책의 성형평성을 높이고 젠더 관계에 변화를 꾀하려는 적극적인 전략이다. 성주류화는 모든 분야의 정책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성주류화 정책 도구인 성별영향분석평가, 성인지예산, 성인지통계는 도시 및 건축 공간이 여성과 남성에게 공평한 환경을 제공하는지 분석하는데도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정책 도구들이 도시 및 건축 분야의 정책에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 및 건축 분야는 젠더중립적이라는 사고가 강하고 성형평성이나 성인지적 관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도시 및 건축공간에 대한 젠더 연구도 미흡한 현실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성주류화 정책 도구들은 여성가족부가 제공하는 지침을 기준으로 모든 분야에 일반화된 형태로 적용되고 있어서 도시 및 건축 분야의 특수성을 반영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도시 및 건축 공간의 성형평성을 높이려는 원래의 목적대로 수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본 연구는 기존의 성주류화 정책 도구들이 도시 및 건축 분야에서 실효성 있는 제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도시 및 건축 분야의 특성을 고려하여 도시·건축공간을 성인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모형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도시 및 건축 공간에서 성평형성이란 무엇인가?
도시 및 건축 공간에 대한 성인지 분석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도시·건축공간에서 남성과 여성의 다른 요구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도시·건축공간의 성별요구 반영 여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도시 및 건축 공간과 젠더 관계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살펴보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본 연구는 도시 및 건축 분야에서 이루어져온 젠더 연구들을 고찰하고, 성인지 분석을 위한 성주류화 정책 도구들을 살펴보았다. 또한, 도시 및 건축 공간을 성인지적으로 분석한 해외 사례와 국내의 성인지적 분석 도구의 적용 현황을 조사하였으며, 도시 및 건축 분야의 유사 평가 제도와 비교하여 특성을 파악하였다. 이를 통해 도시·건축공간의 성인지적 분석모형을 구축하기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도시·건축공간이 성평등하다는 것은 도시·건축의 공간구조가 여성과 남성의 성형평성을 지지하고, 도시·건축의 공간이 모든 연령, 임금, 인종의 여성과 남성을 위해 계획되며, 특정한 성에 차별적인 경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공평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건축 공간의 성평등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다름이 인식되고, 공간-구조적이고 사회-경제적인 상황 뿐 아니라 그들의 연령, 삶의 상황, 종교, 문화, 사회적 배경이 고려되어야만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시·건축공간의 성인지적 분석모형은 다음의 방법으로 구축되었다. 우선, 거시적 접근으로서 구조주의적 조경계획 평가(Structuralist Landscape Planning Assessment: SLA)를 활용하여 성인지적 분석모형의 범주를 구성하였다. 이는 도시 및 건축 공간을 건조환경의 물리적 형태 뿐 아니라 그 기저의 사회적 구조 및 문화적 규범까지 함께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범주는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의 구조주의적인 구분을 바탕으로, '사회적 규범', '정책의 성별관련성', '정책참여의 성형평성', '자원분배의 성형평성', '법과 제도의 성형평성', '수행결과 및 평가'의 여섯 가지로 구성된다.
미시적 접근을 통해서는 정성적 요소 및 정량적 요소를 도출하였다. 정성적 요소를 도출하기 위해 여성과 남성의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성별요구를 파악하였다. 심층면접과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데이터 분석을 통해 여성과 남성의 공간 및 시간 사용 패턴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도시·건축공간에 대한 성별요구는 '돌봄', '이동성', '여가 및 커뮤니케이션', '안전성'으로 파악되었다. 정량적 요소의 구성을 위해 기존의 도시 및 건축 분야의 통계에 대해 통계 프로세스별 성인지 분석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항목의 구성 및 문제점을 파악하고 분석모형의 점검요소에 반영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도시·건축의 성인지적 분석을 위한 범주 및 분석 내용, 분석 대상 및 점검요소 등을 구성하여 성인지적 분석모형을 제안하였다.
성인지적 분석모형은 도시 및 건축 공간의 성별관련성을 드러내는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성별영향분석평가, 성인지예산, 성인지통계가 도시 및 건축 분야에서 수행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성인지적 분석모형의 범주를 토대로 성별영향분석평가는 사전평가와 사후평가로, 성인지예산은 성인지예산서 및 성인지결산서로 구성하였는데, 도시 및 건축의 물리적인 환경에 내재된 사회문화적 구조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의 활용 형태를 제안하였다. 또한 기존 통계의 성인지 분석의 결과와 성인지적 분석모형을 바탕으로 성인지통계 구성안을 제시하여, 성별영향분석평가와 성인지예산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본 연구는 도시 및 건축 분야의 젠더 연구가 미흡한 현실에서 도시·건축공간에서 젠더 이슈의 중요성을 밝히고,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구조 안에서 도시와 건축 공간을 성인지적인 관점으로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로서 희소성을 지닌다. 성인지적 분석모형은 도시 및 건축 공간이 젠더중립적이지 않으며, 여성과 남성이 공간에 대해 다른 요구를 가지고 있음을 가시화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이는 도시 및 건축 공간에서의 다양한 젠더 이슈를 찾아내는데 분석의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성인지적 분석도구에 기반한 성주류화 도구의 활용안은 도시 및 건축 정책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지침에서 고려하지 못했던 물리적 환경 중심의 분야적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 도시의 구조 및 건축 환경 뿐 아니라 그 이면의 구조에 대한 접근을 수반함으로써, 단순한 불편함의 해소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을 위한 개선방안을 도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사전평가와 사후평가의 제안 및 성별영향분석평가, 성인지예산, 성인지통계의 연계 방안은 정책이 환류되는데 수월한 형태를 제공하여 성주류화 정책 도구들의 실효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 및 건축 분야의 정책 및 계획들은 그 규모나 특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성인지적 분석모형을 적용하는데는 대상정책 및 계획에 따라 본 연구가 제안한 도시 및 건축 요소의 사례 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활용될 수 있다. 이 분석모형은 여러 정책이나 계획에 실제 적용하여 그 결과가 누적되면서 더 풍부해지고 정밀해질 수 있다. 이후 연구에서는 다양한 실제 정책 사례에 적용하는 실증적 방법을 통해 성인지적 분석모형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도시·건축공간의 성인지적인 분석을 위해서 성인지적 관념과 도시 및 건축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이 함께 요구되므로, 분석과정에서 젠더 전문가와 도시 및 건축 전문가가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에 대한 연구도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