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영역과 가족 영역에서의 급격한 재구조화를 특징으로 하는 최근의 경제·사회적 변화에 따라, 북구유럽을 중심으로 한 많은 국가들에서는 여성 고용을 증가시키고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방안으로 일-가족 양립정책을 구축해 왔다. 많은 국가들에서는 일-가족 양립정책의 목표를 국가 경제성장과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로 한정시키고 '젠더평등'을 선택적인 이슈로 다루고 있으나, 젠더평등은 본질적 가치 뿐 아니라 당면 목표의 해결을 위한 수단적 가치로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므로 주요 정책 목표로 강조될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젠더평등 증진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돌봄의 사회화 정책'과 '남성 무급노동 참여 정책'으로 집약될 수 있다. 돌봄의 사회화 정책만으로는 여성의 이중부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남성 무급노동 참여 정책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돌봄의 사회화 정책과 남성 무급노동 참여 정책이 상호보완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이론적인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상의 논의에 기반하여 본 연구는 일-가족 양립정책이 젠더평등에 미치는 효과를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보다 효과적인 젠더평등 효과를 도출하기 위한 일-가족 양립정책의 구축방안을 모색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Gornick and Meyers(2003)와 송다영·장수정·김은지(2008)의 일-가족 양립정책 지수를 수정·보완하여 독립변수로 활용하고, Multinational Time Use Study의 가족 내 무급노동시간 지표를 젠더평등을 나타내는 종속변수로 활용하여, 2000년대 전후 기간에 대한 위계적 선형모형(Hierarchical Linear Model)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일-가족 양립정책의 젠더평등 효과를 살펴본 결과, 돌봄의 사회화 정책은 젠더평등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남성 무급노동 참여 정책은 성별이 무급노동시간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일-가족 양립정책에 따라 성별에 따른 무급노동시간의 격차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구체적인 정책 근거 마련을 위해 일-가족 양립정책의 관계 설정에 따른 젠더평등 효과를 추가적으로 분석한 결과, 돌봄의 사회화 정책과 남성 무급노동 참여 정책의 상호작용은 젠더평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각의 정책 변수가 독립적으로 무급노동시간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이들 양 정책이 역동적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젠더평등 효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 정책의 독자적 시행은 진정한 가족 내 젠더평등을 달성하기에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으며, '보편적 생계·돌봄 양립'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양 정책이 동시적으로 발달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셋째, 돌봄의 사회화 정책은 남성 무급노동 참여 정책과 결합하는 경우에만 젠더 불평등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각의 정책을 분리시켜 성별 무급노동시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을 때 돌봄의 사회화 정책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던 젠더 불평등 효과가 삼방향 상호작용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돌봄의 사회화 정책만으로 해결되지 못하였던 여성의 이중부담 문제가 남성 무급노동 참여 정책을 통해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결국 돌봄의 사회화 정책이 젠더평등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남성 무급노동 참여 정책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밝혀진 일-가족 양립정책의 젠더평등 효과와 세부 정책들의 관계 설정 방식은, 실질적 젠더평등을 달성하고자 하는 국가들에게 정책적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젠더평등의 본질적·수단적 가치 추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