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은 시지각을 통하여 시각적 특성과 의미가 파악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빛의 지각을 기초로 하는 '가시성의 기호학(Sémiotique du visible)'을 시각예술에 적용해보고자 한다. 특히 시지각을 통한 시각요소의 분절과 의미작용 분석을 통하여, 그간 깊은 분석과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중섭의 〈소〉 연작에 적용할 것이다. 〈소〉 연작은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각 작품이 가지는 색채의 강약, 붓질의 대조 등을 통한차이점을 가진다. 이는 시지각에 의해서만 파악이 되는 성질들이라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분석할 도구가 요청된다. 그러한 점에서 가시성의 기호학적 특성과 방식을 통하여 〈소〉 연작의 미묘한 특성과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한국근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이중섭을 꼽을 수 있다. 그러한 만큼 그간 수많은 평문과 논문, 기사 등이 작성되었다. 그렇지만 비극적인 삶을 산 천재작가라는 논의가 무비판적으로 반복되어 온 만큼, 보다 객관적으로 이중섭의 작품을 분석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이중섭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그간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 연작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비록 이중섭이 특정 소재를 반복해서 그려왔지만,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인 군동화나 은지화와는 다른, 〈소〉 연작만의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작품들이 행복한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는 반면, 〈소〉 연작에서는 더욱 강렬한 표현과 작가의 감정이 드러난다. 그러한 점에서 소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소〉 연작을 분석함에 있어서, 역사, 사회적 배경이나 개인사적 배경을 보류하고, 작품 그 자체에 더 초점을 맞춰 내재적 구조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파리학파 기호학에서 9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시각 기호학적 방법론인 가시성의 기호학을 적용하고자 한다.
가시성의 기호학은 기호학자 퐁타니유(J. Fontanille)가 구축한 방식으로, 이전의 파리학파 시각기호학의 중심을 이루었던 플로슈(J.-M. Floch)의 조형기호학(Sémiotique plastique)의 방식을 토대로 하면서, 정념(des passions)의 개념과 현상학적 지각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정념의 개념은 스승인 그레마스(A. J. Greimas)와 함께 쓴 『정념의 기호학(Sémiotique des passions)』(1992)을 기반으로 하였고, 여기서 주체의 고유한 신체(le corps propre)가 지각과 정념을 느끼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를 시각이미지에 적용할 수 있는 가시성의 기호학을 전개하였다. 퐁타니유는 가시성이 성립되는 것은 '빛(lumière)'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시각이미지를 분석함에 있어서 빛의 구성체(la configuration de la lumière)를 분절하고, 이러한 구성체가 가지는 의미효과(les effets de sens)와 이들이 역동성을 가지고 형성하는 행정(parcours)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가시성의 기호학을 통하여 단지 빛을 지각하는 것 뿐 아니라, 빛의 효과와 행정을 통하여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을 퐁타니유는 리투아니아의 작곡가 겸 화가인 치우르리오니스(M. K. Čiurlionis)의 두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이와 같은 시각예술작품에 대한 지각에 관심을 두는 가시성의 기호학의 개념과 방법론을 본고에서는 이중섭의 〈소〉 연작에 적용하였다. 먼저 9점의 작품을 분석시료로 선정하였고, 이들을 구성에 따라 3가지 연작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작품을 빛의 기호학적 방식으로 분석한 후, 이들이 이루는 빛의 긴장정도를 통하여 정념을 대응하였다.
첫 번째, 〈흰 소〉 연작에서는 주로 화면에 한 마리의 소가 서 있는 형상으로, 빛의 집중과 순환, 확산과 부동의 강도와 범위에 따라서, 그리움, 행복, 권태를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소의 상반신만이 드러나는 〈황소〉 연작으로, 배경과 형상에서 빛의 행정이 연동되는 지의 여부에 따라 다른 행정을 가졌다. 하지만 빛 구성체들이 이루는 긴장의 정도로 볼 때, 세 작품 모두 추구하는 대상의 충만함에서 오는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세 번째 연작은 화면에 두 마리의 소가 싸우는 모습으로, 〈흰 소〉 연작과 마찬가지로, 빛 구성체의 정도에 따라 그리움, 행복, 권태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이전에 인상주의 비평적 방식과 달리, 보다 작품자체에 근거하여 발화자가 표현하는 감정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여러 작품으로 이루어진 〈소〉 연작들 간의 미세한 차이를 보다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작품의 내재적 구조 분석을 통해 찾은 감정을 이중섭의 전기적 상황과 연결하여, 의미를 확장해보고자 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그리움은 사랑하는 가족과 대작을 그리고픈 열망을 펼칠 수 없는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며, 여러 상황에서 희망을 품고 노력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겪은 공허함은 권태의 정념을 이룬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과 달리, 충만한 현전에서 오는 행복도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다가올 행복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고, 이를 통해 얻어진 용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중섭의 〈소〉 연작은 그간 현실을 외면해왔던 작가의 말없는 자아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소의 모습이 모두 결합되어, 이중섭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소〉 연작이 이중섭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차별적이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