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정보화시대에 새로운 외교방안으로서 동북아 평화번영과 한반도 통일을 위한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의 강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주로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존의 통일외교방안으로는 정보화 및 세계화 시대에 통일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구성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통일외교로서 본 연구가 제시하는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 방안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전제에서 출발한다: 1) 정보화시대에는 새로운 통일외교 방안이 필요하다; 2) 정보화시대 외교는 국경을 초월한 전문가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3)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의 신질서 구축을 동시에 추구할 때 한반도 통일이 용이하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 본 연구는 첫 번째,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기존 통일외교를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의 역할을 소개하였다. 우리나라 통일외교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국제체제의 역사적 변화의 관점에서 살펴본 결과 기존의 통일외교가 여전히 국가에만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세계화와 정보화를 비롯한 국제체제의 변화로 인해 외교의 행위자, 대상, 내용이 다원화·다양화·다변화·다층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현행 통일외교가 새로운 외교환경의 흐름에 지체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세계화와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국가 중심의 통일외교를 다원화, 다양화, 다변화, 다층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동북아를 중심으로 인식공동체를 형성·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의 일차적인 목적과 관심은 정보화 시대의 통일외교의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한반도 통일은 필수적으로 동북아 신질서의 태동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조를 없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통일외교의 범주를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평화번영으로 확대하고, 이러한 외교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식공동체를 가리켜 '동북아 인식공동체'라고 명명하였다.
동북아 인식공동체는 한반도 통일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비전을 공유한 가운데 각 분야에서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아 국내외적 정책결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문가 집단의 네트워크를 일컫는다. 동북아 인식공동체는 국경을 초월하여 한반도 통일을 비롯한 동북아의 평화 번영과 관련된 이슈를 개발한 후 각 나라와 국제사회의 주요 정책 어젠다로 채택하도록 하며 이에 대한 효율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보화시대에는 국경을 초월한 정보 및 지식의 교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기술적·물리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인식공동체를 활용할 때, 현행 통일외교가 지닌 정부 대 정부 위주의 외교행태를 다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 앞으로 '동북아 인식공동체'가 국제적 차원, 국내적 차원, 남북 차원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 동북아 인식공동체는 주변 4국에게 통일편익을 이해시키고 동북아 정체성 정립의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동북아 협력에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국내적 차원에서는 정책결정자들에게 정책조언을 제공하고 통일에 순기능적인 여론을 형성 및 주도하며 국민들의 통일의지와 역량을 고취시킴으로써 통일외교를 뒷받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북 간 민족 평화통일의 비전을 공유하면서 남북통일의 당사자들 간 신뢰를 구축하여 점진적인 통일 프로세스를 이행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동북아 인식공동체는 경제적 상호의존과 정치·군사적 갈등이 병렬적으로 나타나는 동북아 역내 국가들 간의 행위에서 협력 가능한 공동의 이익을 도출해냄으로써 평화구축 및 제도화 과정에서 촉매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세 번째, 동북아 인식공동체의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유럽통합 과정과 독일통일 과정에서 인식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분석한 결과, 동북아 인식공동체가 동북아 평화번영과 한반도 통일을 동시에 추구할 때 두 가지 과제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또한 최근 동북아 인식공동체의 실태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경우가 지속성과 실효성이 부족한 단순한 전문가들 간 대화의 장(場)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정부 간 합의의 결과로 트랙2 또는 트랙1.5 차원의 회의가 활성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비해 동북아 전문가들 간 공동연구 및 국제회의가 증가하고 있으며 그 협력분야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 인식공동체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였다. 한편, 국내 인식공동체의 정책영향력의 미흡, 동북아 전문가 네트워크의 편중 및 집중 현상, 남북 인식공동체 형성의 제약 등은 장애요인으로서 이를 극복하여 동북아 인식공동체로 발전 및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