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한국의 게이 감독들이 연출한 동시대 한국 남성 동성애 영화들이 욕망하고 상상하는 관계성에 대해 분석한다. 그동안 퀴어 영화학은 동성애규범적 진보 서사를 추동하는 정체성의 정치학을 좇느라 관계의 윤리학을 간과하곤 했다. 한국의 남성 동성애 영화들은 다양하고 미묘한 관계적 양상들을 바탕으로 각자만의 '친밀한 유토피아'를 정교하게 구축해나간다. 그 유토피아는 공동체에서부터 연인 관계, 친구 관계를 통해 발원하며, 때로는 현실에 순응하고 때로는 현실을 전복하며 완성되어 간다.
먼저 김조광수의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2012)에서는 게이들의 자긍심을 고양해 그들을 좋은 시민으로 훈육하고 초공동체적 국가로 안전하게 통합시키기 위해 게이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게이 공동체에 복속된 게이들에게는 사랑과 우정의 의미마저 제한적이다. 그들은 대도시에 살면서 마음껏 사랑을 나누며 '구애자의 유토피아'를 누린다. 그 유토피아는 그들을 나르시시즘적 주체로 호명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나르시시즘을 유지하고 견고하게 하기 위해 소비하듯이 사랑과 섹스에 몰두한다. 그 세계에서 우정은 게이 공동체의 유대를 위한 수단으로 물화된다.
반면에, 소준문 감독의 영화 속 게이들은 둘 만의 가슴 아픈 사랑으로 도피하며 '회고적 유토피아'를 세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법적인 섹슈얼리티를 숨길 수 있는 모텔 방에 갇혀, 뜨거운 사랑을 나누거나 일상적 보살핌의 행위를 흉내 낸다. 그곳은 게이들을 위한 현실화된 유토피아로서 '퀴어 헤테로토피아'이다. 동성애자들에게는 미래가 없기에 그 헤테로토피아는 과거를 지향하는 회고적 특성을 지닌다. 미래가 없는 동성애자의 사랑은 먼 과거의 시간으로 물러나면 날수록 이미지로 포획한 회상 속에서 더 아름답게 빛이 난다.
다음으로,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게이들의 일탈적인 욕망을 묘사한다. 그는 게이 공동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나아가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아나키즘적 욕망을 공표한다. 나아가 그는 사랑마저 자본주의적 논리에 길들여버린 대도시를 혐오하며, '낭만적 사랑'의 본래적 의미를 복원한다. 그것은 달콤한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에 흠집을 내는 부정성을 향한다. 이제 그들은 간절하게 애정을 갈구하거나 금욕적으로 서로를 밀어내며 '구애의 유토피아'를 일별한다. 그 구애 활동은 주체의 나르시시즘을 끊임없이 파괴하며 사랑이 불가해한 타자와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끝으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관계를 통해 대안적 관계성의 근간이 되는 우정을 재발명한다. 관계 맺기란 성 정체성에 앞서 각자의 체험과 기억에 대한 내밀한 소통이 필요한 행위이다. 그것은 규범에서 이탈한 그 모든 친밀한 관계를 욕망하는 퀴어들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야간비행〉(2014)에서 그들은 공동체가 요구하는 강한 유대를 보류한 채 약한 유대를 견디며 친구가 된다. 친구와 함께하는 미래는 목표가 아니라,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몸짓, 관계를 열어젖히는 몸짓 안에 있다. 혹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에서는 야오이의 급진적 가능성을 차용하며, 성차를 제거 한 뒤 친밀성을 사유한다. 규범적 정동으로부터 소외된 등장인물들은 공통의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 공포증을 공유하며 퀴어 공동체를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