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와 환상적인 이야기는 여러 문화권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많은 환상문학 작품들은 다양한 매체에서 수용되고 있으며 이로써 환상장르의 영화는 다시금 원작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르에 관한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기는 하나 환상문학 작품은 현 시대의 독자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문학 장르임이 틀림없다. 중세시대 때 이교도적이고 통속적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여 20세기까지 어린 독자들에게 적합하지 않게 여겨졌던 환상은 오늘 날 작품의 성공여부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독일 아동·청소년 환상문학 작가인 제임스 크뤼스 James Krüss(1926-1997)의 청소년소설 『팀 탈러 혹은 팔아버린 웃음 Timm Thaler oder Das verkaufte Lachen』과 이의 후속작인 『넬레 혹은 천재소녀 Nele oder Das Wunderkind 』에 나타난 악마와의 거래 모티프 그리고 환상의 기능을 고찰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1950년대 중반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 작가의 환상문학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크뤼스는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Otfried Preußler(1923-2013)와 함께 독일어권 국가 아동·청소년 환상문학의 초석을 세운 작가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크뤼스의 작품들은 같은 시대 활동하던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들보다 시대의 현실적인 삶과 더 직결되어 있다. 환상은 비현실적인 속성 때문에 현실의 세계를 반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작품에 나타난 환상성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시각을 넓혀주기도 한다. 현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물질적인 가치가 곧 의미 있는 삶을 규정짓는 척도가 되어버린 자본주의 사회이다. 이러한 척박한 세상 속에서 인간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점차 망각해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크뤼스는 자신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팀 탈러』와 『넬레』에 서양 문화권의 환상문학에 자주 나타나는 악마와의 거래 모티프를 재해석하여 등장시킨다. 『팀 탈러』에서 악마는 사업가이자 남작으로 그의 이름은 독일어 악마라는 뜻의 단어 Teufel의 애너그램이기도 한 레푸에트 Louis Lefuet 남작으로 묘사되며 『넬레』에서는 성공한 음반사의 회장으로 형상화 된다. 어린 주인공 팀과 넬레는 물질적인 거래의 대가로 인간의 근본적인 자질인 눈물과 웃음을 악마에게 빼앗겨버린다.
본 연구에서는 악마와의 거래 모티프와 감정을 빼앗긴다는 환상성이 작품에서 가지는 의의와 기능을 중점으로 조명하였다. 크뤼스는 『팀 탈러』에서 비밀스러운 남작 그리고 『넬레』에서는 검은 신사라는 상대역을 등장시킴으로 인해 흥미를 유발하는 예술적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크뤼스의 작품에서 환상적인 모티프는 유희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의도된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 있어 성장해가고 있는 지배적인 자본은 악마적인 권력이었다. 크뤼스의 예술세계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며 그는 환상의 도움으로 경제기적시대의 이면과 사회의 배금주의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크뤼스가 창조해낸 환상적인 세계는 인간이 물질적인 유혹을 극복하지 못 하였을 때 감정이 결핍된 인간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크뤼스는 악을 통해 자본과 권력이 인간의 감정보다 더 중요시 되는 악마저인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두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이 감정을 잃는 것은 인간적인 삶의 결핍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크뤼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인간답게 하는 것, 혹은 이를 파괴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어 각성하게 하고 우리가 구축해야 할 인간다운 세상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