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는 猛禽류의 한 종류로 매의 종류마다 사냥하는 짐승이 다르며, 인간들에 의해 길들여져 필요한 사냥감을 사냥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짐승이다. 매는 古代부터 現代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와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예로 문헌, 공예, 회화 등 매를 표현한 문화재들이 상당수 남아있으며, 현재는 '시치미를 떼다' , '매끄럽다' 등 어원과 함께 매의 상징적 의미가 남아 삼재와 액운을 막는 부적으로 존재한다.
현재까지 매 그림에 대한 연구는 보스턴 미술관에 원대 화가 徐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던 李巖의 架鷹圖를 회화적으로 분석하여 이암이 제작하였음을 규명하였다. 北宋 徽宗의 매 그림의 복제와 파생을 연구하여 복제된 휘종 황제의 그림이 조선에 왔을 때 갖는 주술적 의미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매 그림의 전개 과정을 통해 각 시대별로 매 그림 의 제작 배경을 다루어 양식적인 특징을 규명한 논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국내 및 해외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매 그림들을 대상으로 시기별로 구분하여 그 특징을 문화 유행의 흐름 변화에 따른 그림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실록에서 보여주는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 관계는 매 사냥 문화와 문화를 주도하는 주요 지배층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회적 영향으로 인하여 변화하는 그림 양식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조선 초기의 鷹圖 형태는 화원화가 중심의 규격화된 그림인 架鷹圖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는 명나라에 매를 진헌해야하는 품목이라는 점과 왕실 중심의 놀이 문화로 인한 결과로 추정되어 진다. 조선 중기 이후 매를 명나라에 더 이상 진헌하지 않게 되면서 매 사냥의 관리가 소홀해지며 귀족 놀이 문화형태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그림의 형태는 당시 유행했던 화풍과 정형화된 매 그림이 아닌 화가의 특징이 나타나는 형태로 변화한다.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번성했던 매 문화는 쇠퇴의 시기를 걷기 시작하며, 그림의 형태 또한 기존 유명했던 화가의 작품을 모방한 그림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매의 상징적 의미가 남아 주술적 의미의 그림 형태로 제작되었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매 사냥 문화를 주도했던 계층이 왕족중심에서 귀족층으로 옮겨졌고 이로 인해 매 그림의 양태가 달라졌다. 따라서 본 고는 매 사냥 문화의 변화와 그에 따른 그림의 양태 변화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그 당시 선조들에게 매가 어떤 중요한 가치가 있었으며, 이로 인한 우리나라의 매 그림에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현존하는 그림들을 각 시기별로 구분하여 시대적 상황과 매 사냥 문화의 유행의 흐름 및 화풍의 유행을 알아보고, 매 그림의 양태 변화를 정리하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조선시대 매 사냥 유행과 그림 연구를 통해 잊혀져가는 매 그림 및 사냥 문화를 보존 및 계승 발전에 도움이 되는데 목적을 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