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관동무〉의 연행 기록을 연구하고 총괄적으로 정리하여, 향후 〈관동무〉 연구를 위한 토대와 기초 자료를 마련하는 데 있다. 1580년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지어 노래하고 춤추게 한 데서 비롯한 향악정재 〈관동무〉의 연행 배경과, 관변문화로서 민간과 궁중에서 연행되어 졌던 기록을 연구, 추적하여 살핀 결과는 다음과 같다.
〈관동무〉가 연행될 수 있었던 데에는 『관동별곡』의 가창 연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관동무〉의 노랫말인 『관동별곡』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수용계층을 형성하였고, 19세기 최고위 문화층에서 향유되면서 〈관동무〉가 궁중으로 유입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관동무〉의 궁중 유입 배경은 외방기들과 선상기들에 의한 활발한 문화교류, 조선 후기 궁중 연향의 변화, 그리고 『관동별곡』의 주제와 궁중 연향의 목적성이 부합하는 점이다. 『무신진찬의궤』는 〈관동무〉의 궁중 연행 기록으로 1848년 헌종이 주재한 창경궁 통명전 진찬례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관동무〉는 8인의 무원이 좌, 우 두 대로 나뉘어 『관동별곡』을 병창하면서, 구부렸다 폈다 하고 진퇴, 선회하며 춤을 춘다. 이 춤사위는 노랫말을 형상화하며 진행된다. 반주 음악은 세취작의 『전전환지곡』과 『가연지곡』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향악의 성악곡이다. 8인으로 구성된 『취풍형지무』의 형식, 악장의 구조, 반주 음악의 성격과 편성, 이렇게 세 가지 면에서 궁중 정재 〈봉래의〉와 유사점을 볼 수 있다.
이 논문의 의의는 그간 연구되지 못하고 있던 〈관동무〉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그 연행 기록을 정리한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