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거버넌스는 참여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대안적 모델로서 등장하였다. 한국은 발전국가 전략을 기반으로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행정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압도적인 성장을 일궈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정보화, 세계화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시민사회로부터 정부 주도의 발전계획이 유효한지 의문을 제기하도록 하였고, 정부가 독점한 의사결정 권한에 대한 분배 요구를 촉발했다. 이러한 변화는 행정제도의 개방을 야기했고, 시민참여를 위한 방안이 모색되도록 하였으며, 이에 대한 부응으로 거버넌스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참여 촉진을 위한 정책과제로서 본격 추진된 거버넌스는 정책결정과정의 권한 분배를 실천하기 위한 방향보다, 더 많은 참여자를 동원하여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행정 대응의 변화를 가시화하는 방향으로 변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본 연구는 천여 명의 민간 참여자로 구성된 중구 문화예술거버넌스를 사례로 거버넌스의 적실성을 분석하였으며, 거버넌스 개념이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구 문화예술거버넌스는 공공기관과 민간 참여자가 함께 지역의 문화예술 의제를 구상하고, 사업을 결정하며, 궁극적으로 상향식의 예산 구조 확립을 목표로 제시하였으나, 운영 방식은 기존의 수직적 협업 관계의 맥락을 견지하고 있었다.
둘째, 거버넌스는 '지역 예술인 생태계 구축'의 정책 목표 아래 행정 개혁의 움직임과 예술인의 주도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모색됨에 따라, 예술가의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예술 활동을 보장 및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변용되었다.
셋째, 지방의회 등 행정기관과 민간의 상호 협의 과정이 구축되지 않아 예산 수립의 실효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실효성 있는 거버넌스 운영을 위해서는 거버넌스 개념에 대한 참여자 간 명확한 합의가 있어야 하며, 상호 의존성 및 정책적 책임을 높이기 위해 행정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행정기관을 공공서비스 제공 주체로, 민간 참여자를 사업을 기획 및 운영하는 생산 주체로 분류하면 기존의 위계적 협력 방식은 교착될 수밖에 없다. 거버넌스의 효능감은 민간 참여자에게 부여된 권한이 실질적으로 작용할 때 제고된다. 따라서 의사결정과정에 있어 행정시스템에 관여하는 각개 사업 담당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며, 예산 편성을 승인하는 지방의회의 참여 또한 설계되어 예산집행의 실효가 발휘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거버넌스 운영 사례를 다루어 정책의 변용 과정을 분석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이를 통해 국내 거버넌스의 바람직한 역할과 참여자 상호 간 협력관계를 톺아보기 위한 시사점이 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