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권력의 특수성은 체제의 변칙적 운용에 있다. '변칙적'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원칙에서 벗어나 달라진' 그리고 '변칙'은 '원칙에서 벗어나 달라진 법칙이나 규정'이라고 쓰여 있다. 변칙적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의 사회주의 당국가체제는 원칙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당국가체제에서 당은 공산당을, 국가는 행정을 뜻하는 체제로, 당의 정책과 노선은 당대회라는 상징적인 정치행사를 통해 선언되고, 국가의 행정은 당대회에서 보고된 내용을 헌법에 반영하여 정책을 집행하는 체제를 일컫는다. 따라서 사회주의 당국가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체제를 구성하는 당대회와 헌법의 분석이 요구된다.
북한은 초기 조선로동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각 당파의 연합적 성격의 정치체제로 사회주의국가의 민주집중제와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소군정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면서 권력구축을 준비하는 단계였고 1인 절대권력의 단계는 아니었다. 1961년 4차 당대회가 분수령이 되어 김일성은 자신의 절대권력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내게 되었다. 4차 당대회는 '승리자의 대회'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김일성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제거하고 김일성과 김일성의 절대충성파인 빨치산파만이 남게 되어 북한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 5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의 절대권력은 주체사상으로 추상화되어 김일성주의로 수렴된 후 유일지도체제가 확립되었고, 이 체제의 완성을 위해 1972년 사회주의헌법을 제정하여 부자세습을 위한 초헌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반입법적 헌법개정이 시행되었다. 이후 1980년에 열린 6차 당대회에서는 아들, 김정일을 내세워 부자세습의 정당성까지 확보했다. 이렇듯 북한은 사회주의체제의 양대 중심축인 당대회와 헌법이 수령의 절대권력과 유일지배 그리고 혈통에 의한 세습체제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면서 체제의 변칙성이 뿌리내리게 되었고 3대 김정은 시대에 그 변칙성은 고착화단계로 전환되었다.
이처럼 북한의 당대회와 헌법의 변칙적 운용은 계속되었고, 가장 변칙적인 것은 김일성 집권기에 6차례나 열린 당대회가 김정일 집권기에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 당국가체제에서 당대회는 체제유지의 상징성을 갖는 당의 중요한 공식행사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열리는 당대회를 통해서 보고된 당의 정책과 노선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가기구가 정책을 집행할 수 있도록 당대회의 보고내용을 헌법에 반영하여 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일 집권기에는 후계세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헌법 개정만 몇 차례 진행되었을 뿐 당대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북한의 변칙적 체제운용에 대한 분석은 북한의 제대로 이해하고 북한 정책을 위한 기초연구로서도 필요성이 요구된다.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실증적 검증을 통한 분석이 당연시되지만, 북한은 실제적 관찰의 어려움이 항시 존재한다. 그럼에도 실체적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헌법과 당대회의 1차 문헌자료는 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 특히 사회주의국가의 헌법과 당대회는 국가의 통치구조와 권력관계의 전 과정이 공식적으로 기록된 문헌자료로서도 의미가 있다.
한편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만 해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국가발전과 인민의 생활향상을 위한 경제성장에 -제한적이지만-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게다가 구소련의 영향하에 있던 동구권의 많은 나라들이 현재 권위주의로부터의 전환을 통해 정치에서의 민주화와 경제에서의 시장화로 체제전환을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도미노에도 북한은 흔들림 없이 자신들만의 기이한 정치체제를 고수하면서 '주체와 선군'을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수령중심의 유일지배체제'를 더 강화·발전시켜 근현대에 유례가 없는 왕조체제로의 변신을 선보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3대 수령에 오른 김정은은 한발 더 나아가 선대의 사상을 계승·발전시켜'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의 지도사상으로 채택하여 당의유일적 영도체제를 더 공고화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내세웠던 선군체제를 개편하여 노동당 중심의 당·국가체제로 복원시킴으로써 주변의 김정은에 대한 '정치경험이 미숙한 젊은 수령의 리더십'이라는 불안과 우려를 무색하게 했다. 또한 국가체제를 개편하고 당대회를 5년 주기로 정례화함으로써 지난 5년의 성과와 미래 5년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게 되면서 향후 북한체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보다 과감한 핵과 미사일실험을 강행하면서 앞선 기대감을 불안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근현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북한의 3대에 걸친 세습군주체제가 어떻게 70년 이상 지속·가능했고, 이를 가능케 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과 당대회를 자의적으로 활용하여 체제를 파행과 기형으로 이어 온 북한의 변칙적 체제 운영에 대한 구조분석은 그 실체를 밝히는 첫 번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진보는 1보"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70년이 넘게 유지해 온 북한체제의 변칙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북한정책의 1보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3대 김정은 위원장의 국가운영이 인민중심의 경제 우선 정책으로 보다 진보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과감한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대들과는 차별화된 통치스타일로 자신만의 유일지배체제를 공고화하면서 은둔과 폐쇄로 상징되었던 과거의 이미지를 벗어나 절차중심의 정책결정과 당·정·군의 균형적인 견제를 바탕으로 전통과 실리를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북한의 체제전환 가능성을 열면서 전환모델에 대한 연구의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이에 북한정책의 방향전환과 북한의 체제전환 가능성 모델도 재검토했다.
이 논문은 북한의 특수한 국가체제 내부의 단단한 구조, '체제의 변칙성'을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중국과 북한의 당대회와 헌법이라는 공식기록인 1차 문헌자료의 비교분석을 먼저 진행하고, 이후 국내외 관련 2차 자료 및 인터넷 기사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헌법전문과 당규약까지 검토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하고자 노력했다. 이 논문이 북한학에 입문하는 연구자들에게 유익한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소망하면서 정성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