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실크로드는 중국에서부터 동남아, 남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기까지 남중국해, 인도양을 넘어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연결하는 중요한 국제정치, 경제, 문화 통로이다. 따라서 남방실크로드에 대한 연구는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연구 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영역의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존 연구 결과와 고고학 및 문헌 데이터에 따르면 남방실크로드 인근 지역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상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각 지역은 상호 교류를 통해 정치적 균형을 이루고, 경제적 교류와 문화적 영향을 서로 미쳤다고 결론지어 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교역품이었던 차(茶)와 차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관련 고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전 문헌학의 관점에서 남방실크로드에 대한 연구가 이 논문의 초점이다. 기존의 남방실크로드의 연구 성과는 대부분 고고학 분야에 국한되어 있으며 학자들은 남사로 진한(秦漢)시기 이전의 연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다.
하지만, 남방실크로드 한위(漢魏)시기 이후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본 논문은 문헌을 바탕으로 남방실크로드에 대한 연구 범위를 시기적으로 한위(漢魏) 이후 시기까지 넓혀 고찰하였고, 고고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두고 고전 문헌 자료까지 최대한 활용하여 살폈다. 차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고 남방실크로드에서 차 문화와 차 산업교류와 관련된 역사적 주요 단서와 특징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와 논증을 진행하였다. 남방실크로드 차 관련 문헌의 분류, 비교 및 해석과 문헌 실증 분석을 기반으로 본 논문의 주요 내용을 구성했다.
차는 남방실크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및 문화 교류 매개체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에서 남방실크로드 지역은 오래전부터 차 생산의 주요 지역이었으며, 그 생산량은 중국 차 경제의 절반을 차지했다. 중국의 주요 남방실크로드 지역인 파촉(巴蜀) 지역, 운귀(云貴) 지역, 광시 지역이 경제 문화 발전의 핵심 지역이며, 이들 지역의 경제발전이 남방실크로드 지역 경제 발전의 성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주로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우선, 파촉(巴蜀) 지역은 중국 차 생산의 중심지 중 하나이며, 파촉(巴蜀) 지역의 차 생산은 서주(西周) 초기부터 시작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 문헌에 따르면 촉(蜀) 지역의 차는 남방실크로드의 차 마시는 문화와 선차(禪茶)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특수한 지리적 위치와 발달된 차 산업으로 인해 정부가 시행하는 차와 말의 무역은 남방실크로드의 발전와 심지어 중국의 정치적 안정에 매우 중요했다. 중국 역사상 오랫동안 정치 활동의 주요 지역은 북방이었고, 남방지역은 북방보다 전쟁이 적었으며, 통치자들은 남방의 상대적 정치적 안정을 통해 남방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를 원했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중국 통치자들은 남방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 행위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남방에서 취한 많은 정치, 경제 정책은 안정, 구속, 억지력 위주였다. 남방실크로드 지역은 차 경제 문화가 오래 전부터 발전하고 매우 깊은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초기 차 경제 발전은 파촉(巴蜀)지역에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지만, 차가 점차 토번(吐蕃) 지역을 포함한 북서부와 남서부의 소수민족의 필수 생활 필수품이 되었음을 통치자가 발견했을 때 그 경제적 성격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북방 소수민족의 군마(軍馬)가 필요하고 소수민족은 중국 남부의 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시 정부는 차마(茶馬) 무역에 정치적 목적과 의의를 부여하였다.
당나라 후기부터 중국의 차 무역은 기본적으로 경제자유무역의 특성을 잃고 국가 독점 관리 및 독점 판매로 대체되어버렸다. 이러한 정치, 경제 정책은 국가의 주도로 남부지방에 차를 널리 심었기 때문에 남부지방에는 거대한 차밭과 광대한 소수민족을 포함한 매우 번성한 차 문화가 생겼다.
그러나 결국 북송(北宋) 중기부터 파촉(巴蜀) 지역은 정부가 지정한 차마전매의 주요 공급원이 되었다. 즉 남방실크로드 지역에서 차 농부들이 생산한 차는 더 이상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고 정부가 직접 구매해 말과 무역하는 용도로만 사용하였다. 좋은 점은 생산된 차의 품질이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모두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차 경제의 시장 발전을 파괴하여 명(明)청(清) 이후 남방실크로드 지역의 차 경제의 쇠퇴에 대한 단초가 되었다.
파촉(巴蜀) 지역은 남방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경제 및 문화 발전의 핵심 지역 중 하나이다. 차 생산에 관한한 파촉(巴蜀) 지역이 중요한 지역이라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역대 문헌의 기록으로 볼 때 파촉(巴蜀) 지역의 차 생산량과 중앙 정부에 제공되는 생산량은 모두 각 지역 중 1위이며, 둘째, 차 발전 역사의 관점에서 파촉(巴蜀) 지역은 인공 차 재배의 발원지 중 하나이며 인류 차 문명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마지막으로 차 경제 문화의 확산 경로의 관점에서 볼 때 파촉(巴蜀) 지역의 차 경제 문화 발전은 남쪽의 윈난, 귀주, 광시 지역보다 약간 앞서 있다.
남방 민족은 제갈량(諸葛亮)을 "차의 조상"으로 여기는 문화 현상이 있는데, 당나라 남조(南詔) 시대의 차 문화는 위진(魏晋) 시대 중원(中原)과 파촉(巴蜀) 지역의 차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차 경제 문화가 파촉(巴蜀) 지역에서 중원(中原)을 따라 남쪽으로 전파되는 추세를 알 수 있다. 윈남 지역, 귀주 지역, 광시 지역의 차 경제 문화의 발전은 남방실크로드 차 문화와 교류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윈난성의 차 문화는 오랜 역사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선차(禪茶) 문화의 함의가 매우 깊고 차 산업은 차마(茶馬) 무역에서 빠르게 발전했다. 귀주와 광시 지역은 모두 차 전매지역에 포함되었으며 차 산업은 어느 정도 발전했다.
본 논문에서 주로 논의되는 차 문화와 차 산업의 관계로 볼 때 문화 발전 과정은 전적으로 경제 발전에 의존한다. 고도의 물질문명이 선도하지 않았다면 남방실크로드를 따라 이렇게 풍부한 문화유형이 형성되지 않았음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남방실크로드의 발달된 차 문화는 경제 발전을 기반으로 하며, 전파력뿐만 아니라 경제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부가가치를 높였다는 점은 본 논문이 새롭게 실증적으로 밝힌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차 문화의 풍부함이 경제 발전의 변화에 가져온 점에 대해서 향후 지속적으로 대비 고찰을 진행하는 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