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이후 한국 불교는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전 시대인 고려시대까지 번성하였던 밀교는 더욱 악화되어 그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고려시대 왕실에서 거의 매일같이 열렸던 밀교도량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대부분 중단되었고, 밀교 종단이었던 신인종과 총지종은 종단 통폐합 과정에서 선종 계열에 흡수되어 버렸다. 이처럼 고대 한국에서 수용되었던 잡밀적 경향이 통일신라, 고려를 거치면서 『대일경』, 『금강정경』 등에 근거한 순밀적 양상을 띠었다가 조선왕조 오백 년 기간 전체적인 불교의 침체와 더불어 밀교는 현교화된 것이다.
『한국불교의례자료총서』(이하에서는 『총서』로 약칭함)에는 총 74종 124권에 달하는 불교의식 문헌들이 제1집으로부터 제4집까지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이 총서에는 중국, 일본 문헌과 고려시대 말기 간행된 수권의 문헌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헌은 조선 중후기에 간행된 문헌이다. 이 책의 편자인 세민스님은 크게 선정형의례와 기도형의례로 나누면서 전자에는 선정삼매를, 후자에는 밀교형의례와 정토교형의례로 구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의례의 구분이 각각의 문헌마다 한 가지의 의례로 특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함께 섞여 있는 것이 한국 밀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밀교가 선종 안으로 흡수됨으로써 선가 의식문 안에도 밀교적 요소가 들어가 있고, 예참문을 비롯한 각종 의식문에도 밀교의 삼밀수행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총서』의 74종 문헌 중에서 특히 『조상경』, 『밀교개간집』 등에서는 양부만다라인 태장만다라와 금강계만다라와 관련되는 비로자나불을 비롯한 오불에 대한 관상과 대원경지 등 유식 사지에서 비롯된 법계체성지 등의 밀교 오지가 나타나고 있고, 『권공제반문』 등에서는 금강계만다라의 삼십칠존에 대한 내용과 비밀실지, 입실지, 출실지의 삼종실지 등이 나타나고 있다.
비록 74종의 문헌 수에 비하여 밀교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수가 많지는 않지만 불교의식 설행에 있어서 해당 의식의 우주관 내지 방편설에 밀교적 요소는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현교에서는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이 법계에 변만(遍滿)해 있지만, 밀교의 금강계에서는 불부, 연화부, 금강부, 보부, 갈마부의 오부로 나타남으로써 중생교화에 더욱 세밀한 원리와 실천이 뒤따른다. 이러한 밀교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는 불교의식 문헌들이 『총서』에 수록되어 있음을 본 연구에서는 찾아 그 내용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하여 한국 밀교의 특성을 정의한다면,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불완전한 전승과 전개를 들 수 있다. 밀교에서 삼밀가지는 밀교수법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밀교에서는 구밀인 진언염송이 주를 이룬다. 대부분의 불교의식 문헌에는 염송할 진언이 나타나고 있지만 삼밀가지의 일환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적 측면에서도 한국 밀교는 관음신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신앙에 밀교가 포함되어 있으며, 불교 문화적인 측면 또한 밀교적 요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진언염송은 물론 불복장의식 속의 밀교 의궤, 범자 종자 등의 장엄문화 등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