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요약
본 논문은 19세기 기녀이자 시인, 화가로 활약했던 죽향(竹香)의 생애와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글이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여성의 회화나 서예작품은 부족한 문헌자료와 현존작으로 인해 충분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더욱이 신사임당을 비롯한 16·17세기 여성화가들의 작품에 있어 진위(眞僞)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죽향의《화조화훼초충도첩》은 19세기 여성화가의 드문 진작(眞作)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여성사나 문학계에서만 다루어진 기녀의 예술과 의식세계를 그림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그동안 죽향의 교유관계와 활동상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전해져 왔다. 그러나 관련 기록을 토대로 언니인 죽엽(竹葉)과 더불어 평양에서 이름난 명기(名妓)이자 서울로 이주한 후부터는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김이양(金履陽) 등 당대 명사들 및 중인층 작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며 문학과 회화 방면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예술가로서의 행적을 조명하였다.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화조화훼초충도첩》은 죽향의 작품으로 유일하게 알려진 그림이다. 풀벌레, 모란, 장미, 연꽃, 난초 등 조선의 여성화가들이 즐겨 그린 소재를 선택하여 섬세한 필치로 그렸다. 하지만 대상을 화면 한쪽에 크게 부각시키거나 일부만 그린 절지화(折枝畵) 양식을 채택했다든지 중국화보풍(中國畵譜風)의 영향을 보인 사례, 진순(陣淳)이나 운수평(운壽平) 등 원·명대 화가들의 화법을 차용한 점은 이전 시기 여성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죽향이 조선후기에 유행한 중국 화조화풍 양식을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죽향이 자신의 시에서 중국의 유명한 기녀들을 언급하며 심리를 투영시켰고 그림에 있어서는 동시기 중국 여성화가들의 소재와 기법을 차용했다는 사실을 통해 기녀이자 여성화가로서의 위치를 의식했음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