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代 萬曆年間(1573~1620)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인쇄출판업의 호황과 기행문화가 확산되면서 활발히 간행되기 시작한 山氷版畵는 淸代까지 꾸준히 발전하였다. 전통적 地理與圖와 實景氷水畵의 특징을 수렴하며 성립하였고 마침내 한 폭의 회화로 보아도 손색없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17~18세기 중국 산수판화의 전개과정은 인문지리적 성격으로부터 점차 순수회화적 면모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행되었다. 『三才圖會』(1607)와 『海內奇觀』(1609)이 전자에 해당하며 『名山圖』(1633)와 『太平山水圖』(1648), 黃山版畵가 후자에 속한다.
이들 산수판화는 대개 전해오던 方志나 선행 판본류를 참작하여 제작하였다. 시기가 가장 앞서는 『삼재도회』 「地理卷」은 『해내기관』의 원천 자료로 활용되었다. 이어서 『명산도』는 『해내기관』의 양식을 일부 차용하면서 실경 산수화의 성과까지 수용하여 회화성을 끌어올렸다. 이러한 추세는 청초 『태평산수도』와 각종 황산판화집으로 계승되어 일반회화와 더욱 밀착되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康熙帝(재위 1662~1711) 때 편찬된 『古今圖書集成』 「山川典」순수회화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명산도』 양식을 주조로 여타 판화집의 장점을 채택하였다.
17~18세기 중국 산수판화집은 큰 시차 없이 朝鮮에 전래되었고 왕실 이하 사대부, 화가에 이르기까지 널리 열람되었다. 특히 실경산수화의 붐이 조성된 18세기에는 鄭敾(1676~1759)과 金弘道(1745~1806 이후) 등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양식 정립에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17~18세기 산수판화는 중국과 한국 지식인들에게 인문지리와 시문의 학습서가 되는 한편, 화가들에게는 회화교본으로 기능하기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