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집단기억, 지역성, 미디어 등과 같은 현재 문화학과 문화연구의 핵심 개념들을 수용하여 독일의 문화적 정체성의 구조와 특징, 그리고 그것의 현재 및 미래 방향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신봉되었던 많은 관념과 이상理想들이 권력과 지배관계를 통해 구성된 담론의 결과라는 포스트 모던적 인식은 역사 역시 '구성성Konstruktcharakter'의 문제로 보게 하는 바, 본 연구 역사 이러한 인식의 물결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이란 하나의 명료하고 단일한 집단의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동적이며 복합적이며, 여러 가지 정체성모델들의 상호작용의 과정이자 결과'로서 파악한다.
본 연구는 독일의 문화적 정체성의 형성에서 중요한 추동력으로 작용했던 '적대관계, 분열, 그리고 적(敵)이미지'는 곧 분산적, 지역적 특수성과 직결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특히 19세기 이후 독일에서의 지역적 정체성과 민족주의의 모순을 지적하고자 하고, 이 둘의 상충적 보완관계를 상술하기 위해 '하멜른의 쥐잡이' 전설을 예로 들 것이다. 이 전설은 이전에도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특히 그림형제와 낭만주의를 통해 대중적으로 발견되고 난 후 전독일적으로, 또 매 시대마다 재차 달리 수용, 변용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서, 독일의 가장 유명한 동화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대표동화로서의 눈부신 부상浮上과 어울리지 않게 이 동화는 독일민족주의라는 거대한 구조물과 통합되기 힘든 무언가를 처음부터, 즉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말의 독일민족주의는 4개의 중요한 신화 혹은 신념이 떠받치고 있는 하나의 상상적 구조물이라 볼 수 있는데, 그 4가지(키프호이저의 바바로사황제신화, 게르만숭배, 동방정책, 그리고 반나폴레옹 해방전쟁에 대한 기억) 중 하나인 동방정책은 중세부터 이루어져온 독일의 동부식민지건설사업과 연관되어 있다. 바로 이 동부식민지건설사업의 그늘진 체험이 하멜른 전설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기 때문에, 하멜른 동화는 '독일확장의 꿈'과 근본적으로 '불화'하는 것이다. 지역의 삶의 체험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근대 민족주의 시대에서 자기의 컨텍스트에서 유리되어 국민적 정체성 기획이라든가 독일 전통, 민족 문화 유산으로 기능화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지역성이라는 삶의 구체적 차원이 가지고 있던 '회상과 기억'의 형상 및 기능이 국민적 유산과 전통으로 바뀌는 과정은 낭만주의에 의해 구술적 기억들을 문자적으로 고정시키는 미디어적 전환을 통해서 일어났다.
본 연구는 위와 같은 논의의 기반 위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초국가적 정치, 문화적 미디어적 환경 속의 독일의 정체성을 계속 논의한다. 여기에서는 독일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담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시각적 상징적 미디어적 조형물을 통한 정체성표현의 함의를 말하고자 하였다. 2006년 월드컵주최국으로서의 통일독일, 유럽연합의 중심으로서의 독일이 '아이디어 산책'을 통해 제시한 국가브랜드이미지는 지극히 산문적이었는데, 즉 역사적으로 독일땅에서 배출된 기술적 발명적 성취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회상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떠한 통합적인 의미의 '서사', 헤게모니를 지향하는 하나의 중심의 '신화'를 지향하지 않고, 그저 기술과 과학, 예술 사이의 병렬적 배열과 단순집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21세기에도 독일의 문화적 정체성은 분산적이며 지역적이며 파편적인 것의 공존과 수평적 연계의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지구화시대 이미지생산의 혼종성원칙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또한 독일의 문화적 정체성의 특징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중심을 통한, 혹은 하나의 중심을 향한 위계적 통합에 대한 불편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