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지식인 호세 마르티는 인종차별에 예리한 비판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반제국주의의 선구자라고 일컬어진다. 여기서는 호세 마르티의 사상이 집약되었다고 평가받는 호세 마르티의 대표적인 글 『우리의 아메리카』를 자세히 읽어보면서, 정말로 그런 일반적인 평가가 정당한지, 그리고 이 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밝혀보려고 한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 연구를 비롯하여 범미주의를 배격하고 라틴아메리카주의에 바탕을 둔 최근 문화연구의 초석을 이룬다는 점에서, 19세기 말에 발표된 마르티의 이 글은 라틴아메리카 공화국들의 건립과정뿐만 아니라, 지금의 문화적 상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19세기와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화 및 정체성 담론을 연구하는 데 반드시 심층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글이다.
이렇듯 『우리의 아메리카』는 마르티의 가장 잘 알려진 글이며, 그의 핵심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지주 언급만 되고 있을 뿐, 이 글에 대한 심층적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이 글의 어휘가 몹시 풍부하고, 마르티의 사상과 이론이 집약되어 있어 읽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어려움은 마르티가 사용하는 단어보다도 은유적 표현에 있다. 또한 『우리의 아메리카』는 혼종 대륙의 집단적 정체성을 다루고 있기에 정치적 맥락도 포함하기 때문에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혼혈' 개념이 인종적 혼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혼혈로 가득한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어떻게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연구동향을 보면 흔히 마르티의 『우리의 아메리카』는 라틴아메리카 인종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 글을 면밀히 읽어볼 경우에는 혼종으로 구성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인가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화로운 혼종으로서 혼혈 아메리카를 다루는 『우리의 아메리카』는 상상적인 것으로, 즉 일종의 실현되어야 할 계획으로 제시된다. 이 글은 혼종성에 관한 그의 담론은 부정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일반적이고 인본적인 원칙과 인간의 권리를 다시 호소하고자 하는 게 아니며, 북쪽의 위협적인 세력과 변별성을 이루는 것도 아니라, 혼종적이고 조화로운 집단성을 표현하는 집단적 차원의 긍정적 상징을 창조하고자 첫 발짝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