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는 지난 세기 말에 코뮤니즘이라는 도덕적·실천적 명령에 부응하기 위해 해체에서 트랜스크리틱으로 칸트적 전회를 단행하였다. 해체와 트랜스크리틱이 비판의 전략으로서 갖는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해체와는 달리 트랜스크리틱이 이론적 구조를 확정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천을 논하기 위하여 먼저 이론의 구조를 확정지어야 한다는 강박은 대상으로서의 실재에 대한 단순화와 도식화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라타니의 문제, 즉 이론적 구조에 대한 명징성의 추구가 실천의 가능성과 방향을 제한하고 억압할 수 있다는 문제는 모든 이론적 확정의 시도가 필연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위험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