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란 단순히 인간이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구성된 다양한 차원의 의미들이 축적된 공간이다. 인간은 심리적 측면에서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애착을 느낌으로써, 그리고 행위적 측면에서 삶의 터를 만들고 이웃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공간을 구체적 장소로 만들어 나간다. 이 글은 공간이 어떻게 구체적인 장소로 만들어져 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돌산마을을 사례로 하여, 경관을 통한 주민들의 장소 의미와 장소 애착의 형성, 삶의 터를 만들어가는 주체들의 행위와 경험을 살펴보았다.
돌산마을의 대표적 경관인 무덤은 이곳이 산 사람들의 생활공간이 아니며, 국가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의 삶터라는 중층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주 초기 외부의 시선과 무덤이라는 경관으로 인해 형성되었던 장소에 대한 부정적 의미는, 이곳이 살아야만 하는 장소라는 인식과 함께 긍정적 의미로의 환치가 일어난다. 장소에 대한 의미의 환치는 마을 사람들의 장소애착의 출발점이자 장소만들기 행위의 전제가 된다. 장소만들기의 또 다른 측면은 안정적 주거권 확보, 전기·상수도 등의 사회기반시설 확보 같은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민들의 행위에서도 확인된다. 배제된 삶의 경험과 주어진 조건을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주민들의 공동체주의 정신과 네트워크 형성을 촉진시켰고, 이를 통해 타협과 저항을 조율하면서 마을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은 다시 장소애착으로 연결되는 순환적 과정을 보인다. 돌산마을 주민들의 장소애착과 이에 기반한 행위들은 배제된 지역의 장소만들기 과정의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