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식민지시기에 조선에 들어선 백계 러시아인 사회를 분석한 것이다. 백계 러시아인 사회는 20세기 초 국제정치 상황에 휘둘린 망명촌이었다. 1920년대 초 한반도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볼셰비키에 쫓겨 피난 온 백계 러시아인들의 피난처였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상하이, 홍콩, 하얼빈,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샌프란시스코 등지로 다시 떠났지만, 일부는 한반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반도에 머문 사람들은 식민지시기 조선의 경성과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에 백계 러시아인 사회를 만들었다. 경성에는 정동과 남대문 일대를 중심으로 백계 러시아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정동에는 주로 제정러시아 귀족과 장교, 성직자들이 살았고 상대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남대문 일대에 살았던 백계 러시아인들은 오늘날 3D 업종에 해당하는 노동을 하면서 살았다.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에는 폴란드 귀족의 자손인 유리 얀코프스키가 동아시아의 백계 러시아인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노비나’ 촌을 만들었다. 얀코프스키 일가는 일본식민당국의 후원으로 농장 경영, 가축 사육, 사냥, 휴양지 제공 등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조선의 백계 러시아인 사회는 20세기 국제정치에 또다시 좌우되었다. 1940년에 들어서 국제정세에 전운이 감돌자, 백계 러시아인들은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떠나지 못하고 1950년까지 한국에 남아 있었던 백계 러시아인들은 북한군 포로로 송환되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