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에서 절대 다수의 조선민중을 상대해야 했던 조선총독부의 치안당국에 비해 본국에서 소수의 재일조선인을 감시·단속해야 했던 일본 치안당국의 조선인 인식은 서로 유사하면서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고경찰 및 검사국 등 본국의 치안당국은 무엇보다 일본사회에 유입된 재일조선인을 구별해내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이고, 이를 위해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기존의 전통적 조선인관을 토대로 자신들의 '접촉' 경험을 보완하여 새로운 재일조선인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시기별로 나누어볼 때 1920년대 일본 치안당국의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식의 특징은 '더럽다', '게으르다', '위험하다'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조선인관을 답습하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실제 일상생활 속에서의 감시·단속 경험을 통해 이를 강화하는 형태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경제불황과 실업문제라고 하는 192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일본사회와 그 수가 증가하고 있던 재일조선인과의 마찰을 야기하여, 일본치안 당국의 인식도 그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해 전시체제에 돌입하게 되는 1930년대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식의 특징은 '치안유지'와 관련한 사항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특히 재일조선인들이 고유의 '민족성'에 의해 '거짓말'과 '사기'에 능한 것이 문제라는 인식이 당시의 시국상황과 관련해 특고경찰과 검사국의 치안대책회의에서 주요 현안으로 논의될 정도였다. 1940년대 전반의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식의 특징은 태평양전쟁의 패전을 앞두고 200여만 명에 달하는 재일조선인의 친영미적 행동을 두려워하는데서 나온 '복수심'과 '사대주의'에 대한 경계였다.
시기별로 당시 사회상황의 영향을 받아 재일조선인에 대한 치안당국의 인식에 변화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본인이 갖고 있었던 전통적인 조선인관을 답습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근대화된 문명국임을 자부하고 또한 '내선일체'을 내세웠던 일본이었지만, 결국 치안당국이 재일조선인 범죄의 원인을 주로 '민족성'에서 찾고, 이를 근거로 치안대책을 수립해 나가고자 했던 모습은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국일본의 실상과 허상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