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采의 『東國史略』(1906)은 획기적이고 근대적인 서술방법(新史體)을 도입한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역사교과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 책을 일본인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가 쓴 『조선사』(1892)와 『조선근세사』(1901)의 번역서로 인식하여 한국 근대역사학의 선구적 위치를 부여하기를 꺼려한다. 『동국사략』은 “체제 면에서는 근대적 방법을 도입해, 영역별로 분류하고 주제별로 분석하는 발전적 형식을 취하고 있고, 고대사 부분에서 단군관련 서술 등 일부 부분에서 민족적인 서술로 수정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식민사학에 본격적으로 함몰된 책”이라는 평가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평가에 근거해 『동국사략』은 한국 근대사학사 논의에서 배제되고, 한국 근대사학의 원류는 신채호를 출발로 하는 민족주의사학으로 통용되어 왔던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비판적 인식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미 당대에 신채호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신채호의 비판은 대한제국에서 펴낸 교과서들의 고대사 서술이 사대적이며 종속적이라는 것이고, 현재의 비판은 『동국사략』이 식민사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최근 『동국사략』에 대한 재평가가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윤선태는 갑오~광무개혁정권은 하야시의 조선사체계를 ‘국사’로 수용하여, 청으로부터 독립한 근대 조선의 ‘국민’을 창출하려고 했으며, 현채는 『조선사』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하야시가 강조한 ‘임나일본부설’을 배제하였다는 점에서, 청만이 아니라 일본까지도 조선민족의 타자로 의식하는 ‘국사’의 확립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다. 도면회의 경우에도 근대역사학의 임무가 국민의 양성이었다는 점에서 제도로서의 역사교육과 정통론적 통사체계의 확립을 도모하고 있는가를 근대 역사학의 주요한 지표로 설정하고,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현채의 『동국사략』을 한국인이 쓴 최초의 근대적 통사라고 평가하였다.
이외에도 현채와 『동국사략』을 둘러싼 평가와 논쟁은 당시대는 물론이고, 해방 후인 196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 그러한 논의는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전개되었다. 그만큼 그와 그의 저작이 가지는 의미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적지 않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논의가 충분하다고 하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
이글에서는 『동국사략』이 『조선근세사』의 당대사, 그 중에서도 특히 개항이후의 서술을 어떻게 역술했는지, 그리고 1894년 이후 동시대사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이를 통해, 『동국사략』이 가지고 있는 근대역사서로서의 성격을 규명하고 ‘국민 만들기’라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려고 하는지를 실체적으로 규명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근대역사학의 성격규명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한다.Hyeonchae’s(玄采) 『Dongguksaryak』(東國史略) has quite a lot of parts to be evaluated. This text book has been evaluated as a version of translation of 『History of Joseon Dynasty』(朝鮮史) and 『Joseonguensa』(朝鮮近世史, Modern History of Joseon Dynasty) written by Japanese Hayashi Daisuke(林泰輔). Hyeonchae emphasized the necessity of system of Korean linear history in the preface of 『Dongguksaryak』. In addition, for linear history, the contemporary history was emphasized more important than any other issues. And for such awareness of history, diverse history needs to be known including culture, arts, industry, and areas of manners and customs.
It is apparent that ‘nation-building’ is tried in 『Dongguksaryak』 by Hyeonchae. In his scription, the modern awareness that he accepted was something that approved society evolving historic awareness of social Darwinism. The collapse of Great Han Empire was caused by our disability and Japanese wrong policy to him. To him, modernization was more important matter to solve than Japanese evasion‘nation-building’which was pursued by this 『Dongguksaryak』 has finally failed. By the way, his failure convinced us that modern awareness of history in western countries should not be accepted by the countries which fell into colonies as it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