筆寫本 ≪花郞世紀≫ 禮元公條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상당한 부분이 사실이 아닐 것으로 추정하였다. 특히 禮元의 入唐사실과 그 곳에서의 행적은 ≪三國史記≫를 읽은 후에 작성된 창작성이 짙은 내용으로 평가하였다.
예원의 행적은 ≪삼국사기≫와 비슷하지만, 일치하지 않은 점이 많았다. ≪삼국사기≫가 동일한 사실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많았고,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화랑세기≫에서 나오는 신라와 가야의 개국연대와 같은 절대연도들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통하지 않고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었다. 또한 신라 金氏王과 金天과의 연결을 ≪화랑세기≫가 부정하고 있으며, 金石文에서도 당시의 始祖로 인식되고 있던 太祖 星漢에 대한 존재를 ≪화랑세기≫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보다 오히려 늦게 저술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추정하여보았다.筆寫本≪花郞世紀≫禮元公條の內容を檢討した結果、相當な部分が事實ではないと推定した。特に、禮元の入唐事實と其所の行蹟は三國史記を読んだ後に作成されたという、創作性が濃厚な內容であると評價した。
禮元の行蹟は≪三國史記≫と似てはいるが、一致していない点が多かった。≪三國史記≫は同一な事實に対する具體的な言及が多く、事實的であると言える。そして≪花郞世紀≫に出ている新羅と伽倻の開國年代と同一な絶對年度は、≪三國史記≫や≪三國遺事≫を通さなくては分からない內容である。また、新羅の金氏王と金天との連結を≪花郞世紀≫は否定していて、金石文でも當時の始祖として認識されていた、太祖星漢に対する存在も≪花郞世紀≫では見られない。
このような點から、≪花郞世紀≫は≪三國史記≫よりむしろ遅れて著述された可能性が排除できないと推定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