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후 1950년대 탈식민 도시 부산의 방송모습을 당시 지역의 맥락에서 읽고 그려내고자 한다. ‘리틀재팬’이라 불릴 만큼 식민지 시기 일본문화의 영향이 강했던 부산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본문화의 유제, 새로이 부상하는 미국문화, 그리고 피난민 및 귀국 동포의 문화 등 이질적 문화의 용광로로 변모하였다. 부산의 방송지도는 1950년대 냉전의 맥락에서 전파 선전전과 국민위안이 강조되던 중앙의 환경과 선명하게 들려오던 일본방송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전후 부산방송국(HLKB)은 열악한 송신시설, 지리적 거리감 등으로 인해 중앙방송국의 중계가 원활하지 않았던 반면 흥미 있는 일본방송의 청취가 일상화된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청취자의 귀를 끌어 모으고자 했다. 인적 재정적 결핍 속에서도 지역국 최초로 종일방송을 실시했고, 시청자 참여 음악 프로그램들을 자체 제작하여 지역 수용자에게 다가섰다. 하지만, 라디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았고 일본문화와 방송의 영향력이 여전했던 부산에서 HLKB의 전략은 국영방송이라는 조건과 인프라의 부족 속에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상의 논의는 초창기 한국 방송의 모습이 균질적이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This study examines broadcasting landscapes in Busan in 50s. After Korean War, Busan became a kind of cultural melting pot with Japanese cultures, American cultures and refugees’ cultures. Broadcasting maps in Busan was composed in this post colonial conditions. HLKB made an effort to attract the local audience with extension of air time, new type of local programs(such as “Norae Jarang). However, the strategy of HLKB was not successful because of poor personnel and financial fra, and strong influence of Japanese radio on local citizen’s life. This study shows early figures of Korean broadcasting which was constructed under the condition of political independence and Cold war was not homogene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