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한국과 같은 후발 민주화 사회에서 불평등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조직적, 정치적인 계급균열의 형성이 지체되게끔 만드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서유럽에서의 계급균열의 제도화에 대해 립셋-로칸 전통의 비교역사 연구들이 정립한 명제를 근대화 과정의 시점과 순서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 뒤에, 그와 대비되는 후발 민주화 사회의 근대화 과정의 특수성과 균열형성의 지체 간의 연관관계를 정식화했다.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유럽에서는 산업화에 따른 노동계급 조직화와 노동자정당의 대중조직 구축이 진전된 후에 선거정치가 일반화되어 계급기반 정당체계가 안정화된 데 반해, 많은 후발 민주화 사회에서는 노동계급이 조직적,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선거정치가 본격화되어 후원주의적이거나 사인화된 정치세력이 선거를 통해 제도정치를 지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둘째, 민주주의가 긴 단절 없이 유지된 국가에서는 이전 시기에 형성된 균열에 새로이 등장한 균열이 누적된 데 반해, 정치체제의 단절이 심했던 후발 민주화 국가에서는 안정적 균열구조가 형성될 수 없었고 민주 대 반민주의 갈등구도가 권위주의 종식 이후의 정당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셋째, 많은 후발 민주화 사회의 노동계급은 뒤늦게 조직화와 정치화를 시작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서유럽에서 계급균열을 약화시키고 있는 탈산업화, 정보화, 지구화 등의 동시대적 도전에도 직면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후발 민주화 사회에서 서유럽과 같이 대중조직에 뿌리내린 계급균열의 구현이라는 경로가 쉽지 않으며, 선거정치와 시민정치의 역동적 공간을 통한 다계급 동맹의 정치적 구성이라는 독창적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