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세기 후반 왕립지리학회 기관지에 실린 7편의 여행기를 통하여 만주 및 백두산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들 여행기는 만주의 지형과 지리에 대한 세밀한 관찰및 측정을 동반하고 현지에서의 견문에 기반하였으며, 유럽적 지식에 의한 토착적 지식의 전유를 통하여 만주의 풍경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의 여행이 가능하였던 기초는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수행하는 국가기구의 네트워크와 현지의 시설, 그리고 현지인의 실질적인 조력이었다.
19세기 들어 유럽에서 만주 지역 명칭인 ‘Mantchourie’가 등장하고, 이를 영역한 ‘Manchuria’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830년대부터 중국 본토와 구별되면서 동삼성을 포괄하는 만주 영역에 대한 인식이 등장하였다. 처음에는 퉁구스족을 기원으로 하는 만주족의 거주지이고 군사정권에 의하여 통치된다는 점에서 중국 본토와 구별되었으며, 만주 민족과 만주 역사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독자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으로 심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백두산도 새로운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유럽인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