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영언』(국립한글박물관소장본) 무명씨 주제 분류 항목에 수록된 작품들은 단순히 내용을 분류하기 위해 삽입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유명씨부터 무명씨 주제분류 항목에는 악곡표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작품을 이삭대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주의식 등 여항육인의 작품 상당수는 편가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유명씨 작품 전부를 이삭대엽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이는 무명씨 주제분류 항목도 마찬가지이다.
무명씨 주제 분류 항목의 각 주제어에 수록된 작품들은 일련의 ‘질서’ 속에 배열된 하나의 세트set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특성은 주제별 분류 가집인 『고금가곡』과 『근화악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여러 작품을 묶어 세트를 구성하고 다양한 악곡에 얹어 부르는 방식을 編歌라고 한다. 따라서 무명씨 주제 분류 항목의 각 주제어에 배치된 작품들 중 상당수는 編歌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내용 분류를 위한 것이라면 굳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품을 배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편가를 떠나 시조를 세트로 짓는 전통은 조선시대 전시기에 창작되었던 연시조와 연작시조 등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18세기 이후 編歌 형식의 가곡연행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초·이·삼삭대엽에 수록된 작품들의 경우 편가에서 특정 작품의 악곡은 부르는 순서에 의해 결정된다. 가집에 따라 다른 악곡에 편재되어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또한 3개 이상의 악곡으로 구성된 편가에서 첫 번째 노래는 초삭대엽으로 부르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는 초삭대엽이 편가 연행에서 판을 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제 분류의 각 항목에 복수의 작품이 수록된 경우 첫 번째 작품은 초삭대엽으로 가창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 때문에 악곡표시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삼삭대엽 이하 만횡청류까지 작품들의 주제를 분류해 본 결과 연군이나 강호 등 유가이념과 관련된 주제들은 주로 삼삭대엽까지에서 수록된 반면, 유락이나 규정, 탄로 등은 전 악곡에 걸쳐 수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주제에 따라 초·이, 또는 초·이·삼삭대엽만으로 편가가 구성되기도 하고, 소가곡(弄·樂·編)을 모두 포함하여 구성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낙시조는 주로 우락과 계락 등으로 전승된 반면, 만횡청류는 弄이나 ‘엇’계통(얼락, 얼롱, 얼편), 編계통으로 전승되었으며, 『청구영언』 내 작품 배열도 19세기 이후에 弄→얼락→編 등 編歌에서 연행되는 악곡의 순서로 수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만횡청류의 수록 순서도 編歌와 관련이 있으며, 당시에 이미 농·락·편에 대한 변별적 인식이 일정정도 형성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