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국문으로 번역된 제러드 와인버그의 『2차세계대전사』는 히틀러의 인종주의적 외교정책과 홀로코스트를 중심에 놓고 제2차 세계대전 전체를 서술하고자 하는 과감한 시도이다. 와인버그는 이 책을 1980년대에 주로 집필하여 1994년에 초판을 발간, 이후 2005년 신장판이 나올 때까지 자신의 관점과 해석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았다. 사실상 1980년대를 풍미하던 외교사적 접근방식으로 쓰인 2차대전 통사가 국내에 늦게나마 소개된 것이 저서의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저서의 강점은 거대한 규모의 전쟁을 히틀러의 국제주의적 의도를 바탕으로 전투와 전투를 이어주는 과정, 전역과 전역을 넘나드는 국가들의 전략과 외교에 철저하게 집중하여 전쟁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2차대전 통사들이 극적인 장면과 뛰어난 장군들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소비한 나머지 전체 전쟁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실패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와인버그는 개별 전투나 유명한 전선의 일화는 과감하게 생략하여 보수적인 외교사가로서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2차대전사를 서술하는데 성공했다.
정확한 중심잡기에도 불구하고 와인버그도 서술에서의 불균형을 피할 수 없는데, 히틀러를 중심에 놓은 그의 2차대전사는 불가피하게 유럽, 특히 독일로 기울었다. 와인버그의 홀로코스트는 기대만큼 전쟁 전체의 맥락에 잘 자리잡지 못했으며, 동시에 독일사 해석을 놓고 전통주의자와 대립하는 진보사가들의 주장은 지나치리만큼 과감하게 생략되었다. 2005년에 신장판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화사, 사회사, 일상사적 해석의 부재와 해양력에 대한 관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주목을 받는 항공력, 후방 전선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 등은 『2차세계대전사』가 국내에 발간된 최신 2차대전 통사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연구 성과를 곁들여 읽어야한다는 것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