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개화기 여행담론의 형성과 여행을 통한 호연지기의 관계성을 규명하고 있다. 1876년 개항 이후 한국사회는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서구문명의 수용으로 점차 문명개화를 일상문화 속에서도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여행이었다. 여행은 전근대나 근대에서도 여전히 자기의 성찰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하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대한 표상으로 여행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여행기는 여행을 통한 심신을 달래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은 여행을 보다 일상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데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개항 이후 철도 등 교통망이 확장됨에 따라 지역에 따라 ‘관광단’이 조직되어 명승고적과 산업시찰 등을 통해 여행을 재생산하였다. 관광단은 여행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행담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개화기 여행은 문명개화와 관련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심신을 수양하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여행은 “빛나는 것을 넓혀 다소 견문한 바 같고 다름으로 비루함을 녹여내고 피아의 구분을 서로 융합하여 도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다함으로써 천하가 하나 되는 기상이 있게 하고자 함”을 드러내고 있듯이, ‘천하가 하나 되는 기상’ 즉 호연지기의 궁극적 의미를 담고 있다. 수학여행 역시 교육의 연장이었으며, 수학여행이 단순한 유람이 아니라 호연지기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의 토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행은 수양의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여행과 수양의 관계를 의지의 단련이 정신적 수양이고 골육의 단련이 신체의 수양이라고 하며, 여행은 인생수양의 긴요한 효익을 구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듯이, 여행을 통한 통찰력과 학식, 탐험정신 등이 수양의 요인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맹자의 호연지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호연지기는 대개 소년이나 청년들에게 웅대한 기상 또는 진취적 기상을 기르거나 키워가는 표상이었으며, 여행은 소년들에게 지식, 용기, 모험심, 끈기, 기운 등을 주는 호연지기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