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黃喜, 1363-1452)는 87세의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최고위 재상으로서 조선의 제4대 국왕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 1450)을 보좌했다. 그러나 그는 양녕대군에 대한 후원이라는 전력, 고령의 나이, 비리와 부패 등의 약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종은 황희를 중용했을까.
이 글은 그 이유를 ‘헌장(憲章)의 수호자’라는 관점에서 탐색하고자 한다. ‘헌장(憲章)’이란 세종에게 있어 선대의 국왕인 태조와 태종이 이뤄놓은 정치적 유산이다. 세종은 황희를 “헌장(憲章)에 밝다(『세종실록』 14/04/20).”고 평가했다. 황희의 졸기는 황희의 정치적 기여에 대해 “조종(祖宗)의 예전 제도를 경솔하게 변경할 수 없다(『문종실록』 02/02/08).”는 입장을 견지하고 무분별한 제도 개혁을 막은 점을 제시하고 있다.
세종은 재위 18년(1436) 4월, 육조직계제에서 의정부서사제로 통치체제를 전환했다. 황희는 세종이 의정부서사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영의정으로 재직하며, 정책 사안들의 변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 글은 의정부서사제 하에서 황희의 역할, 세종의 황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례 논증으로서 북방의 경략, 공법의 개혁, 세자의 대리청정 세 가지 정책 사안에서 황희의 구체적인 역할을 순서대로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