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가 역사인식론이자 새로운 방법론으로 도입되면서 여성체육에 대하여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게 되었다. 본고는 여성사적 시선에서 여자체육의 도입과 전개를 통하여 성 역할의 변화를 살피고자 하였다.
개화기에 여학교를 통하여 여자체육이 도입되었고 교육제도로 정착되었다. 서양의 근대 문명에 압도된 지식인들은 충군애국과 부국강병의 맥락에서 장래의 어머니인 여성의 체력을 강조하였다. 일제시기에 여자체육은 체조와 경기로 구성되었고 과외활동으로 운동부 활동이 있었다. 1920년대와 30년대를 거쳐 일어난 스포츠 붐 속에서 여성체육도 성장하였다. 도입기의 체육이 체조 중심으로 학교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1920년대 이후에는 경기를 중심으로 하면서 학교 밖으로 확장되었으며, 여학생 중심의 체육에서 기혼여성을 포함하는 등 사회체육으로 진전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1930년대에는 종래부터 해오던 정구, 탁구, 농구, 야구 등 구기 종목 외에 등산, 수영, 빙상 등의 종목이 인기를 얻었다. 또 조선여자체육장려회가 결성되었고 사회에 진출한 엘리트 여성들에 의하여 설립된 여성단체에서 사회체육의 형태로 여자체육이 확대되었다. 조선인들은 조선신궁경기대회 같은 종합체육대회에 참가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여자체육이 실시되면서 성 규범에도 일정한 변화가 생겨났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여자체육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민족의 2세를 위해서 여자체육을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포츠를 통한 민족의 재현과 단합을 도모하는 민족주의는 민족 내부를 경계 짓고 여성에게 모성으로서 역할을 부여하였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취미, 유희의 일부로 개인적인 견지에서 운동을 생각하기도 했다. 또 여자경기가 활성화되고 남성의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생겨나자 여성에게 어느 정도의 운동을 허용할 것인가, 정상적인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연약함보다 운동을 통해 얻은 건강미가 현대 여성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여 종래의 여성미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여성미를 잃지 않는 선에서의 운동을 해야 한다거나 여성미와 모성에 적합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논의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