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스스로를 도덕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인간의 특성상 각 사회의 도덕질서는 그 사회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찰스 테일러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그 전제 위에서 유길준의 도덕질서를 검토했다. ‘국민개사’의 주장이 상징하듯이, 유길준은 서구근대문명을 긍정적으로 소개했으며, 국민국가를 지향하며 국민창출을 위해 노력했다. 근대의 각 나라는 서로 모방하면서 국민국가 형성을 지향했지만, 세계 어떤 나라도 같은 성격의 국민국가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이 논문은 유길준의 도덕관에 주목함으로써 유길준의 근대지향이 갖는 특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국민의 대표명사로 언급된 ‘선비’가 어떤 도덕관을 갖고 있는지 검토했다. 결론적으로 유길준은 도덕질서가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기존의 성리학적 도덕을 세상에서 유일한 가치체계라고 생각했음을 확인했다. 그는 당시 급무였던 조선의 독립과 부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인간성을 실현하는 일로, 즉 유학적 도덕주의로 정당화하였다. 그는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변화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성리학의 틀에서 시도했을 뿐 아니라, 난국을 타개하는 데 도덕의 역할을 과도하게 강조하였다. 도덕질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지 않으며 도덕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은 유길준뿐 아니라 당시 드물지 않은 시대의 특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이 현대 우리의 도덕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주목을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