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의자왕의 딸인 桂山 公主 설화는 모두 3곳에 채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삼국유사와 동경잡기에 수록된 설화는 신라 중심이었다. 반면 일제 때 채록된 설화는 동경잡기에서 비치던 ‘백제 왕녀’의 이름 뿐 아니라 상세한 활약상까지 알려주었다. 본 설화의 주인공이 계산 공주였음을 가리킨다.
왕녀가 무술을 연마하고 南海까지 찾아가 道士에게 仙術을 배우는 이야기는 조선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발상이었다. 계산 공주 설화가 조선시대에 갑자기 창작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사실 백제를 비롯한 삼국은 武를 숭상하여 말 타고 활 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하였다. 수백년 간에 걸친 動亂이 이러한 풍조를 가속시켰다고 할 수 있다.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이 수범을 보였고, 실제 화랑을 비롯한 지배층 전사단의 사망률이 높았다.
한국 고대사회에서는 여성의 비중이 지대했다. 그렇기에 신라에서 3명의 여왕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목 사회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여성이 戰士로 활약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수백년 간에 걸친 동란의 시기에 끊임없이 소진되는 인적 자원을 보충하는 일이 시급한 백제의 현안이었다. 결국 여성도 참전하였고, 왕녀가 수범을 보이는 경우로서 계산 공주 이야기가 첫선을 보인 것이다. 임진왜란 때 여성들이 앞치마에 돌을 날라 주었다는 행주치마 전설은, 성리학적 질서 속의 조선이었지만, 여성의 參戰을 알려주는 전통의 편린이었다.
환타지적인 성격을 지닌 계산 공주 설화는 물론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함축하고 있는 면이 적지 않았다. 가령 삼국시대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알려주는 적절한 소재로 판단되었다. 그렇기에 문화콘텐츠로서의 활용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계산 공주 설화를 ‘이야기 확장하기’를 통해 2차 콘텐츠인 영화・게임・애니메이션 등 영상물로 기획하고, 3차 콘텐츠로 각종 캐릭터 상품과 OST・DVD・여행상품으로 활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