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 한국의 뛰어난 기독 여성들은 민족생존을 꿈꾸며 기독교에 몰두하거나, 여성교육에 전념하거나, 혹은 직접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가 장기화되며 이들 중 일부는 일제에 전향하여 식민정책을 적극 옹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공동체 혹은 특정 공동체에서 이들은 여전히 위대한 인물로만 기억된다. 이들 기독 여성조상의 다양한 모습을 함께 기억할 수는 없을까? 이 글은 위의 질문에서 시작해 유대-기독교에서 영웅시하는 여성조상 라합을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라합은 유대-기독교경전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인물로 유대의 가나안 정착을 결정적으로 도왔다. 그래서 유대-기독교에서 전통적으로 라합을 위대한 인물로 칭송했다. 이 글에서는 유대-기독교의 전통 관점 뿐 아니라 여성신학적 관점, 탈식민관점에서 라합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기억했다. 즉, 라합을 유대-기독교의 위대한 인물로서뿐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을 능가한 여성, 민중해방에 공헌한 여성 민중 혁명가, 또 현실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식민화된 여성으로도 기억했다.
기억하는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이다. 위대한 기독 여성조상을 기억하고 흠모하며, 사실상 이들은 현대 기독여성 내면의 일부가 되었다. 따라서 이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기억하는 것은 우리 내면의 복잡하고 애매한 부분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또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정신적 유산을 깊이 성찰하고 애도하며 우리의 약함 속에서도 동일한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