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조 혼인 풍속의 변천을 살피면서 〈정을선전〉의 갈등구조에 은폐된 혼속의 양상과 의미를 밝히고자 한 것이다. 조선은 개국 시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종법(宗法)을 통해 성리학적 도덕성을 함양하고 실천하고자 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조선 초기 혼인 풍속이었던 ‘남귀여가(男歸女家)’의 방식을 친영례(親迎禮)로 변모시키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였지만, 조선후기까지도 완전한 친영례는 이루어지지 않고 남귀여가혼의 영향 아래 반친영(半親迎)의 혼속이 이루어졌다.
〈정을선전〉은 바로 이러한 반친영의 혼속을 갈등구조에 은폐하고 있는데, 이를 보다 자세히 살피기 위해, 먼저 작품의 전체적인 갈등구조를 탐색하였다. 작품 전반부 갈등의 단락 구성은 혼사 장애를 구현하기 위해 계모형 가정소설의 학대담 모티프를 차용하였고, 후반부 갈등의 단락 구성은 전반부에 나타난 ‘혼사 장애’에 따른 정실 자리의 어지러움에 대한 해소를 구현하기 위해 처처 사이의 애정 갈등담을 차용한 것이라고 보았다.
결국 〈정을선전〉은 유기체적 연관성의 갈등구조를 지닌 작품으로, 이러한 갈등구조에 반친영례의 예식을 구현한 것으로 보았다. 친정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진 익주지방의 상황을 고려할 때는 딸로서의 권리를 잃은 것이며 정을선 본가에서의 상황을 고려할 때는 며느리나 적처로서의 권리와 위치가 더 강하게 보장받은 것인바, 모계와 처계를 배제한 부계 중심의 사회로 전환하는 혼속의 의미를 작품 배면에 은폐시킨 것으로 파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