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일본 선원의 역사에 관한 연구는 해운경영사, 기업사, 노동운동사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가운데 선박노동자의 권리 투쟁을 주제로 하는 노동운동사를 제외하고 해운경영사나 기업사에서 선원은 관리나 경영의 대상‧객체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선원을 한 묶음의 노동자 집단으로 다루는 노동운동사 또한 이 점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
1980-90년대 전후부터 선원 관련 연구는 양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선원의 ‘소멸’이라는 상황이 존재하고 있었다.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일본인 선원의 감소, 바꿔 말하면 외국인 선원의 증가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선원은, 외국인 선원이 여전히 다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점차 연구자들의 문제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선원을 ‘고급’선원과 ‘보통’선원으로 구분하는 근대 일본의 이원적인 선원 정책을 그 양성 과정과 노동 현장의 실태를 통해 밝히고, 그러한 차별을 낳은 주된 원인으로서 국가의 해운 정책에 관해 살펴보는 것이다.
선원을 일컬어 하는 말 ‘바다의 囚人’에는 고립된 환경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선상에서의 차별적 대우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박 중앙부의 독실에 거주하는 고급선원과 파도소리가 진동하는 선수의 방 한 칸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보통선원은 작업 환경이나 보수에서는 물론 식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점에서 차이가 났다. 보통선원은 매 항해마다 고용되는 임시고용의 형태로, 직원록에도 실리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단순히 업무상의 차이를 넘어 인격적인 차별로까지 이어지는 선원사회의 계급적 질서는 교육, 취업, 노동, 군복무, 퇴직 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근대 일본에서 해운 확장은 국가의 팽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국가는 선사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항로 개설을 명령했다. 한편 선사는 정치권력과 결탁함으로써 비대해져갔다. 해운업은 국가의 대외 진출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기간산업이었다. ‘방선방인주의’는 이 기간산업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본 방침으로서, 그것은 해운이 갖는 군사적 성격에서 비롯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 턱없이 높은 임금을 받았던 외국인 선원을 구축함으로써 해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했다. 고급선원의 양성은 방선방인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보통선원 육성에 관해서는, 2차 대전 시 전사 선원을 메우기 위한 일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끝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러한 근대 일본의 이원적 선원 정책이 고급선원과 보통선원 사이의 차별을 낳은 근본적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