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그간 역사적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한 행려병인에 대하여 제도의 형성과 전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행려병인은 조선시대의 유민과 연속적이면서 단절적인 존재라는 점에 주목하여 전통 시대의 유민 대책에 대하여도 검토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역할이 두드러졌는데 조정은 유민에 대한 무상 진휼과 본적지 정착을 시도하였다. 일제시기에 들어서 일본식의 구제제도와 빈곤관이 유입되면서 유민에 대한 대응도 달라졌으며, 종래의 유민은 이 시기에 와서 행려, 부랑, 걸인 등으로 불렸다. 행려병인을 관리하는 법령이 종합적으로 마련된 것은 1920년으로 도 차원의 규정(道令)으로 설립되었다. 규정에 따르며 돌아다니던 중에 병으로 활동이 어려운 사람을 ‘행려병인’이라 하였고 연고자 없이 사망한 사람을 ‘행려사망인’이라 하였다. 행려사망인 처리에서 당국의 주요한 관심은 자기부담의 원칙 하에 처리비용을 청구할 곳을 찾는 데 있었다. 일제시기에 행려사망인 시신을 해부용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사실상 관련 법령 없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없는 처리를 요구하는 행정 측과 사회적 효율성을 강조하는 의대 측의 입장이 대립하였으며 언론은 별 논평 없이 경과를 보도하는 건조하고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시신 훼손에 대한 문화적 금기나 매장에 대한 관습 등은 논의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