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섬사람들을 찾아온 이방인, 특히 중앙무대에서 활동하다가 섬으로 정배된 유배인을 섬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섬에 정배된 유배인은 섬에서의 유배생활을 어떻게 감내하였을까? 섬 주민과 유배인 모두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에 어떻게 조응하였을까? 전통지식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해왔던 섬사람들의 유배인에 대한 시각과 궁벽한 絶島에 정배된 유배인의 섬에 대한 인식이 궁금하다.
이 글은 16세기 전라도 진도에 정배되었던 소재 노수신(1515~1590)의 유배생활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수신은 조선 중종과 선조 때 활동하였던 학자이자 정치가로, 을사사화 때 진도에 정배되어 무려 19년 동안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진도 사람들은 그를 ‘珍島開化之祖’라 칭하였다. 17세기 초에 전라도 진도 유생들은 노수신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진도에 봉암사우를 건립하였다. 봉암사우의 건립은 소재 노수신에 대한 섬사람들의 지극한 예우였다. 16세기 진도에 정배된 소재 노수신의 유배생활과 그가 섬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는지 진도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변화의 물결에 주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