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서구에서 저술된 중국회화사는 대부분 당송(唐宋), 특히 송대(宋代)를 중국 미술의 정점기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사학에서 전범(典範, canon)의 규정은 학문적 성과와 미술관, 미술시장, 미술교육 등 미술 기제(機制)의 상호 작용에 의하여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서구 사회에서는 중국의 미술품이 충분히 유통되거나 교육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아래에서 학자들의 관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이 특정 상황에서 무엇에 의존하여 구축되는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이다.
중국회화사를 비롯한 중국미술사를 최초로 편찬한 국가는 일본이며 일본의 연구 성과는 서구는 물론 중국의 초기 미술사 저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목되는점은 일본 학계의 관점이 메이지 후기의 당송정점론에서 다이쇼 초기의 원(元)정점론으로 바뀌었으며 이 배경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구의연구자들은 정치적 의도는 없었으나 『 일본 미술의 역사 Histoire de l’art duJapon』, 일본어판과 영문판의 『國華』 등 일본 출판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에 따라 서구의 초기 중국회화사에서는 송대를 정점기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다이쇼 초기의 원대정점론이 서구에서 수용되지 않고 배제된 이유는 르네상스를 정점기로 보는 서양미술사와 문인화에 대한 편견에 의해서였다고 유추된다. 즉 20세기 초반 서구의 중국회화사는 지식 축적에 충분하지 않은 자료, 일본 미술사 학계의 문화적 권력 그리고 서양미술사라는 프리즘을 통한 사유 방식에 의하여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