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간주되던 포도주와는 달리 물과 같은 일상 음료로 여겨지던 맥주는 집 밖을 벗어나 수도승들의 공간 속에서 빚어지기 시작했다. 수도승들이 제공하는 공식 음료였던 맥주는 환영과 접대의 상징이자 ‘성인들의 보살핌이 담긴 술’로 탈바꿈했다. 맥주는 중세 수도승들에 의해서 새롭게 탄생했다. 중세 맥주 양조에 대한 관심은 비단 수도승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프랑크 왕국의 왕들과 봉건 세속 영주들은 일찍이 맥주 양조와 소비에 관련된 시설독점권과 관습부과조(慣習賦課租, consuetudines)에 재빠른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과는 달리 수도승들에게 맥주는 물과 함께 수도원 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식음료이자 동시에 새로운 수도원 재원 창출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 글에서는 맥주에 대한 프랑크 왕국 왕들의 꾸준한 관심 속에서 성장해가는 중세 수도원 맥주의 탄생과 그 정치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더불어 중세 맥주 양조와 맥주 관습부과조를 통해 중세 봉건사회를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