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은 산업화와 제국주의라는 국내외적 과제를 안고 급속한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었 다. 산업화 과정에서 기계화를 통한 대량생산품이 수공예품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조잡한 기성품 의 양산으로 공예품의 미적, 질적 저하가 이루어졌고 산업과 예술을 접목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 려는 노력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자국의 제조업의 수준을 자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 기는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Great Exhibition)였다. 이에 디자인 개혁(Design Reform)의 필요성 이 대두되어 디자인 교육 정책을 개편하고, 박람회의 대중적인 성공으로 조성된 기금으로 박람회 에 출품된 각 국의 우수한 산업미술품과 공예품을 사들여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의 초기 소장품을 마련하였다.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의 건립 목적 중 하나가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올바른 취향 제 고’라는 점은 영국 내 다른 박물관과는 차별되는 지점이었다.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이 교육부 산 하 기관으로 실질적인 디자인 교육의 선두에 선 것도 이와 같은 이유였다.
오웬 존스와 같은 예술 교육 행정가들은 디자인 개혁의 사령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우스 켄 싱턴 박물관의 건립을 주도하고 소장품과 전시를 통해 디자이너, 제조업자, 시민에게 좋은 제품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구체적인 노력으로는 박물관의 소장품에서 자신들이 제시하 는 기준에 부합하는 문양을 추출해 도안을 제작하거나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장식미술 과 디자인에 관한 이론서의 발간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도 이러한 모색의 일환이었다. 존스의 중국 장식의 예(Examples of Chinese Ornament)(1867)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예술 행정가들이 좋은 디자인의 예시를 찾고자 고대 미술에서 문양을 추출해 도안화하고 이를 활용하여 디자이너 와 제조사에서 어떻게 새로운 제품을 생산해내는지 일련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로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