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514년과 1515년에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가 교황 레오 10세에게 선물한 코뿔소와 코끼리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지상에 서 가장 두꺼운 피부와 육중한 몸을 가진 이들 이국적인 동물은 국왕과 교황 사이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선물한 것이었지만 16세기 초반의 유럽 미술사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당시 유럽에서 매우 진기했던 동물에 대해 라파엘로는 소화불량으로 죽은 코끼리 를 애도하는 초상을 남겼고, 뒤러는 로마로 이송도중 익사한 코뿔소를 판화로 새겼다. 라파엘로가 현실에서 경험한 코끼리를 사실적으로 묘사 한 것과 달리 뒤러의 코뿔소는 부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러의 작품은 유명세를 얻게 되고, 이후 몇 세기 동안 끊임없이 복제된다. 뒤러는 코뿔소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상상에 의존해 그렸다. 라파엘로가 코끼리의 해부학적 정확성과 엄격한 비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면, 뒤러는 코뿔소의 강인한 동물적 속성을 초상하려고 시도하고 있어 예술가간 묘사의 관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코뿔소의 몸이 마치 여러 장의 갑옷으로 덮인 듯 묘사된 이유다. 뒤러의 코뿔소가 유명해지는 데에는 매체의 선택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뒤러는 당시 새로운 매체인 판화를 이용했다. 제작이 손쉽고 대량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라파엘로는 전통적 방식인 벽화 제작을 위해 코끼리를 스케치했다. 두 화가 간 매체 선택의 차이 외에도 뒤러는 주문이 아닌 개인적인 관심에 따라 작품을 제작했다. 이로 인해 뒤러는 주제의 선정에서 제작 방식, 운영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This paper deals with the pachyderms, which were presented in the eraly 16th century to Pope by King of Portugal. Gifts of exotic animals were associated with the political intentions, but they left a remarkable footprint on European art history. Raphael left a drawing of an elephant’s portrait, while Dürer created the woodcut rhinoceros. In contrast to Raphael’s realistic image of elephant, Dürer's rhinoceros is zoologically inaccurate. Although Dürer had never seen an actual Rhinoceros, he was able to use his imagination. Whereas Raphael focused on anatomical accuracy and strict proportion of elephant in nature, Dürer tried to portray the animal’s super strength. So it seems that its body is covered with hard plates like sheets of armour. The type of media played an important role in gaining popularity. Dürer used the woodcut printing, which was a new medium at that time and was easy to manufacture as well as to mass-produce. But Raphael chose the traditional mural painting. Futhermore, Dürer produced the print in accordance with personal interests rather than customer’s orders. So, he can freely proceed his works from the selection of the subject to the production method and distrib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