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의 여러 궁궐 중에서 독특한 건축적 성격을 갖고 있는 창경궁의 배치와 건축구성을 살펴본 것이다. 특히 명정전 후면부에 위치한 빈양문에 주목하여 이 문과 그 주변이 창경궁의 이용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분석하였다. 빈양문은 창경궁의 내외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경계요소로서 공식적인 합문으로 인식되고 활용되었다. 빈양문의 동쪽은 명정전, 문정전, 숭문당의 뒤편과 종횡으로 연결되는 동선의 결절점이었고 서쪽은 함인정 앞의 마당을 통해 환경전, 경춘전 등 내전의 중심 영역으로 연결되어 있다. 의례의 동선으로 보아도 궁궐 안쪽의 내전에서 외전 혹은 궁 밖으로 이동하는 경로는 빈양문을 경유하여 명정전 등 전각을 관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명정전, 문정전, 숭문당 사이의 연결은 빈양문 동편의 작은 마당을 통하였음이 문헌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궁궐의 내외 개념을 뚜렷하게 지키면서도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동선을 만들어내는 구성방식으로 이해된다. 또한 『동궐도』, 『동궐도형』 등 도판사료에서 확인되는 빈양문 주변 복도각은 외전 전각들 사이 및 궁 밖으로의 주요 동선과 일치하는 것이다. 경복궁, 창덕궁에도 존재하고 있었으나 점차로 사라졌던 복도각의 기능과 존재방식은 창경궁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이와 같이, 빈양문은 창경궁의 배치를 이해하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조선 궁궐의 내외 개념을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구성 방식일 뿐만 아니라, 여타의 궁궐에 남아 있지 않은 오래된 건축적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