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가 붕괴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종래에는 유신체제라는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내재적 모순에 주목하는 견해와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역사적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그 역사적 당위성이 없어지는 ‘성공의 위기’에 주목하는 견해가 있어 왔다. 그러나 본 논문은 이러한 주류적 견해에 대해 ‘하나의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유신체제가 붕괴된 것은 정치와 경제가 상호작용한 결과이며, 그것은 ‘성공의 위기’가 아니라 ‘실패의 위기’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자주국방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한 ‘일석이조’의 대안으로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였고,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가져다준 권력의 집중을 이용하여 대자본가들에게 혜택을 집중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해외수요를 염두에 두고 무리하게 추진한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70년대 말로 갈수록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에 봉착하였지만, 자본에 대해 구조적 자율성을 상당 부분 잃은 박정희 정권은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박정희 정권은 경제체제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전환비용을 사회 일반에 전가하는 ‘위험부담의 사회화’ 전략으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지만, 이는 오히려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7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을 궁지로 몰고 간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은 이러한 위험부담의 사회화와 그에 따른 민심 이반의 결과였으며, 이는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하나의 예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