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을 ‘민족’ 정체성과 연결시키는 움직임 속에서 1935년에 실시된 「구도문물정리계획」은 베이핑의 고건축물에 대한 보수와 그 유적들을 연결하는 도로의 수축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중앙정부는 도로수축 경비를 제한함으로써 물질적 자원이 고건축물 보수에 집중되도록 하였고. 보수의 시급성보다 예술적 혹은 정치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보수대상을 선별하였다. 고건축물 보수 행위 그 자체 혹은 보수 후의 시각적 효과는 난징국민정부의 통치 정당성 강화와 ‘민족’의식 형성이라는 목적에 봉사하였다. 베이핑 고건축물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재해석은 수백 년 동안 장엄하고 휘황찬란한 수도로 자리매김했던 베이징이, 1928년에 수도의 지위를 잃고 구도로 변모했다가, 다시 ‘민족’의 고향─고도(故都)로서의 장소적 의미를 획득하는 데에도 주효했다. 이 시기 노골적으로 드러난 일본의 야심은 베이핑을 향한 중국인들의 애향심을 자극한 동시에 조국(祖國)의 현실과 직결되어 ‘민족’의식의 형성을 촉진하였다.